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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창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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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북촌의 갤러리에서 열린 ‘나의 시인에게’ 전시 전경

서울 종로구 북촌의 갤러리에서 열린 ‘나의 시인에게’ 전시 전경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최근 학술지 논문 한편을 마감했다. 근대문학으로 읽는 한국의 초현실주의 미술을 주제로 썼다. 주류 미술사에서 초현실주의는 한국에서 경향성을 띠지 않았다고 기술됐지만, 문단의 얘기는 달랐다. 문단과 화단이 긴밀했던 시대성을 고려하면 초현실주의의 영향에서 화단만 예외일 수 없었을 것이란 전제에서 출발한 논의였다. 사실 연구자로서 한국의 근현대 미술을 현상으로 다루며 굳이 제목으로 드러내진 않았어도 문학은 내내 주요 참고문헌이었다.



‘왜 학교에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를 쓴 캐나다 출신의 교육학자 데니스 수마라는 문학에서 체득하는 통찰력을 강조한다. 쓰는 행위뿐만 아니라 읽는 행위 역시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기억을 공유하는 실천이라는 관점인데, 특히 문학이 역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장소라는 그의 주장에 동감한다. 미술사에서 누락된 당대성을 문학 작품을 통해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던 미술 담론에서 1920~1930년대 초 출생 작가에게 작동한 언어의 영향은 찾아보기 어렵다. 작품 배경으로 한국전쟁의 상흔은 소환하면서, 식민지 국어를 배우고 일본어로 사고한 시대성은 기술하지 않는 식이다. 문학은 다르다. 저항 시인 김수영(1921~1968)이 쓴 일본어 산문도 숨기지 않는다. 해방 직후 한국말 서툰 문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억압이 논의된다. 이때의 문학은 우리의 흰색 계열 회화가 1931년생 박서보 작가 등을 통해 왜 ‘백(白)’의 미학으로 소개됐는지 이해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이처럼 문학은 수마라의 표현을 빌리면 삶을 통찰하게 되는 점진적 순간으로 경험된다. 작은 플롯과 묘사가 독자가 읽는 자리에서 무릎을 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과 맞닿는 것이다. 그 순간은 미술로 다시 표현될 수 있다. 시를 사랑했던 김환기 작가가 1970년 뉴욕에서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선배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를 읊으며 시구에서 제목을 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그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전시장 한편에 설치된 문학 작품 모음

전시장 한편에 설치된 문학 작품 모음


마침 서울 북촌의 갤러리에서 만난 전시 ‘나의 시인에게’는 문학에서의 순간을 미술로 옮겨낸 자리였다. 전업 작가와 영문학자, 국문학자 등 8인이 애정하는 시인에게 보내는 헌정전이다. 미술가 이창희는 기형도의 시 세계를 반추했다. 1980년대 구조적 소외와 억압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시에 담았던 기형도의 흔적을 좇았다. 기자였던 시인이 출퇴근했던 안양천을 걸으며 시 ‘안개’를 읽고, ‘어느 푸른 저녁’ 속 군중처럼 걷다 시인의 단골 대폿집에도 들렀다는 작가는 파편처럼 시를 옮겨 검은 부엽토를 뿌리고 물감을 얹었다.



국문학자 송효섭은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를 캔버스에 옮겼다. 그림 속 시인은 일어로 쓴 시를 우리말 사전을 뒤적여 한글로 고쳐야 했던, 능통한 영어와 서구적 생활에도 전통을 중시했던 양면의 모습이다. 영문학자 황은주의 설치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경험하게 했다. 독자이자 관객으로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라는 시구를 따라 그리운 이름을 흙에 썼다 지워봤다. 미술을 읽어낼 하나의 창으로 문학을 소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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