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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에 ‘볼모’ 잡힌 나라 [박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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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9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박현 | 논설위원



최근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대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선 승진과 좌천, 상명하복, 실적 압박, 회식 문화 등을 둘러싼 애환이 매우 실감 나게 그려져 공감을 얻었다. 회사에 25년간 충성하고도 임원을 달지 못하고 희망퇴직을 한 김 부장 이야기는 대·중소기업, 세대를 떠나 모든 직장인에게 울림을 주는 스토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김 부장이 가진 자산과 지위는 청년층,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넘사벽’이다. 지금처럼 대기업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주인공은 대기업 부장까지 승진하고, 서울 강남 4구에 번듯한 아파트까지 장만했으니 능히 그럴 만하다.



과거엔 학벌이 상위 계층으로 가는 유력한 통로였다면 지금은 ‘강남 아파트’ 소유 여부가 그걸 대체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명문대를 졸업해도 대기업 취업이 힘들고 취업에 성공해도 승진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강남 아파트 자가’는 로또 당첨처럼 어렵지만 한번 그 대열에 진입하면 집값 급등기에는 1년에 몇억씩 부가 늘어난다. 가만히 있어도 재산이 불어나니 이런 불로소득이 어디 있겠는가.



김 부장은 사기를 당해 ‘경기도 빌라 월세’로 밀려났지만, 이는 대다수 ‘강남 아파트 자가’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다. 정부가 각종 당근과 채찍으로 매물 유도를 해도, 이들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절대로’ 강남을 떠나지 않는다. 아파트값이 계속 오를 가능성이 큰데 이런 기회를 누가 제 발로 걷어차겠는가.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그 삶을 대물림한다. 자녀가 결혼할 때 강남이나 한강벨트에 아파트를 장만해주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최근 통계를 보니 사실이었다. 올해 1~10월 서울 아파트 전체 증여 건수 7708건 중 2934건, 즉 38%가 강남 4구와 ‘마용성’ 사례였다. 심지어 미성년자들에게까지 아파트를 사줬다. 서울에서 미성년자에게 아파트를 증여한 총건수(223건) 중 60%(134건)가 이 지역에 집중됐다. 각종 대출규제로 현금 부자들의 ‘놀이터’가 된 부동산 시장에서 부유층과 그 자손들은 빠르게 강남 4구와 한강벨트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이런 식이면 머지않아 이 지역은 그들만의 ‘캐슬’이 될지도 모른다.



이들 입장에선 매우 상식적인 선택이다. 자녀를 가까이에 두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심정일 게다. 집값도 우상향이 기대되니 일석이조다. 그러나 개인 차원에선 합리적인 이런 선택들이 모여 고공행진하는 강남 집값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엄청나다. 강남 아파트에 온 나라가 ‘볼모’로 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선 경제적으로, 강남 집값 급등은 서울 강북과 경기도 집값을 차례로 들썩이게 한다. 강남은 항상 수도권 투기 확산의 진원지였다. 그 나비효과로 중산층의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지고 전월셋값도 올라 집 없는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거시경제 정책에까지 악영향을 끼쳤다. 경기침체가 심각해 금리인하를 해야 할 시기인데도 투기를 부추길까 봐 못 올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게 고금리가 장기화해 기존 대출자들은 과중한 이자 부담을 계속 져야 했다. 결국 비생산적인 부동산에 자금이 몰리고 소비 여력이 줄어 경제성장까지 갉아먹었다. 과도한 논리 비약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고, 지금도 유사한 상황이다. ‘부동산 망국론’이 괜히 나온 얘기가 아니다.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더 문제적이다. 이런 사회·경제 왜곡 현상을 바로잡는 게 정치에 맡겨진 책무인데도 강남 아파트는 정치인들에게도 건드리기 힘든 성역이 돼 가고 있다. 올해 부동산 시장은 부동산 대책 3대 축(공급·대출·세제)을 모두 동원해도 그 열기를 잠재우기 버거울 정도다. 공급을 단기간에 늘릴 수 없는 여건 속에서 대출 규제와 함께 보유세 인상은 강력한 수요 억제, 매물 유도 정책이 될 수 있으나, 정부는 여전히 이 카드는 꺼내지 못하고 있다. 보유세를 인상했다가 기득권 세력의 ‘조세 저항’으로 낭패를 봤던 과거 진보정부의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서일 게다. 당시 보수언론과 토건세력은 ‘세금 폭탄이 집값 폭등을 불렀다’거나 ‘세금으로 집값 못 잡는다’는 프레임을 씌워 정부를 공격했다. 하지만 이 프레임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허위의식에 가깝다. 2005~2007년, 2020~2021년 집값 폭등은 세계적인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탓이 가장 컸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 20년간 수도권 집값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금리-유동성-주택 수급-경기 순이었다. 사실과 허위를 잘 분간해야 한다. 정치인들까지 강남 아파트에 ‘볼모’로 잡혀 있으면 ‘강남 아파트 자가’를 제외한 대다수 국민의 삶이 힘들어진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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