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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정담] 어려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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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시험은 늘 어렵다. 너무 쉽게 내도 문제고, 너무 어렵게 내도 탈이 난다. 많은 학생은 난이도와 관계없이 시험 자체를 어렵게 느낀다. 가끔 '쉬웠다'며 밝은 표정으로 시험장을 나서는 학생도 있지만, 대개는 점수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경우다. 반면 1점, 2점에도 민감한 학생들은 한 문제의 답을 떠올리느라 밤을 지새운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 문제는 어렵다. 과거 시험에도 괴문제가 있었다. "무(無)를 논하되 '무' 자를 쓰지 말라" "하늘의 소리를 글로 쓰라" "물은 고요한데 흐른다. 이를 논하라". 이런 철학적이고 어려운 문제들이 수험생을 괴롭혔다. 출제 의도나 인재 선발 기준을 따질 겨를조차 없었다.

정조는 직접 문제를 내는 친시(親試)를 자주 열었다. 어느 시험에서는 주역, 중용, 사기, 한서 등 성리학과 경학, 역사를 모두 꿰뚫어야만 풀 수 있는 고난도 논술 문제가 출제됐다. 답안지에 손도 대지 못하거나, 기준 미달의 부실 답안이 속출했다. 결국 정약용·박제가 같은 극소수 엘리트가 합격했다. 유생들은 "이건 왕의 학력 자랑이지, 과거가 아니다"며 불만을 터뜨렸지만, 출제자가 왕이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당시 몇 년을 준비한 시험에 백지를 낸 수험생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부모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

10일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2026학년도 수능 영어 영역의 난이도 조절 실패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 올해 수능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은 3.11%로, 절대평가 도입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온 나라가 몇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그 결과가 인생의 향배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누구나 알지만, 교육 전문가들조차 뾰족한 개선책을 찾지 못한다. 위 세대들은 '나 때도 버텼는데, 너희도 해야 한다'는 묵시적 동맹이라도 맺은 듯하다. 내년 수능에서는 영어가 다소 쉽게 출제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수능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풀기 어려운 문제다.

[서찬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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