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경제센터장 |
환율이 경제 뉴스의 중심이 됐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1월 7일에 1450원을 넘은 후 한 달 넘게 내려오지 않고 있다. 당장 주유소의 기름값이 오른 것으로 고환율이 체감된다. 국내에는 환율이 떨어지리라 기대할 구조적 요인이 없는 게 불안감을 키운다.
외환시장 역사상 환율의 가장 극적인 변화는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있었다. 11월 초만 해도 달러당 1000원이 되지 않던 환율이 12월 24일에 1964.8원을 찍은 것이다. 환율이 시장에서 결정돼 고시된 1990년 이후 지금까지 최고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었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중에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역전이 확대되며 1400원을 넘기도 했지만, 외환위기 때의 충격은 전무후무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던 1997년 말, 12월 31일에 한국은행법이 전부 개정됐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법적으로 도입된 것이 이때다. 법의 목적부터 통화정책을 수립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까지, 독립성은 다방면으로 주입됐다. 개정 전에는 한국은행이 창출하는 돈이 국가 발전에 동원될 수 있었다면, 개정 후에는 한국은행의 역할이 물가 안정으로 명확해졌다. 또한 '한국은행의 중립성'이 제3조에 명문화되고, 무엇보다 개정 전에는 재무부 장관이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장이었으나 개정 후에는 한국은행 총재가 겸임하게 됐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한국이 대외적으로 선진국 인정을 받고 실질적으로 경제 안정을 꾀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권력자가 중앙은행을 잡고 흔드는 튀르키예나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에서는 극심한 인플레이션도 문제지만,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해외 투자자들이 믿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정권마다 한국은행에 압력을 넣는 시도가 공공연히 반복돼왔다. 대개 경기를 자극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낮춰달라는 것이었고, 드물게는 치솟는 집값을 잡겠다고 올려달라는 때도 있었지만, 한국은행은 법에 기대어 잘 버텨왔다.
외환위기 때 한국은행 독립성이 제도화된 것처럼, 환율 불안이 계속되는 지금 독립성 부여를 고민해야 할 대상이 새롭게 생겼다. 바로 국민연금이다. 최근 환율 방어에 국민연금이 동원된다는 보도가 잦다. 기존에는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를 팔든지 팔겠다는 신호를 주든지 해서 급한 불을 꺼왔다. 흔히 외환보유고라 부르는 달러 자산을 이용해서다. 그런데 한미 무역협상 타결 결과 미국에 매년 200억달러 현금 투자를 하게 되면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를 환율 방어에 쓰기 어렵게 됐다.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에 관심이 쏠린 이유다.
국민연금법 제1조에 명시된 법의 목적은 연금을 통해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도모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그 역할만 하면 되고 그래야 한다. 1997년 법 개정 전의 한국은행처럼 국민연금이 국가적 상황에 동원되면, 법에서 정한 역할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부정적일 것이다. 정치적 고려가 들어간 운용 결정이, 위험을 통제하면서 연금기금의 수익성을 최대한 추구한 것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올 리 없기 때문이다. 환율이 더 오르든 떨어지든 말이다.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만 걱정하게 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그 외 다른 걱정이 있는 이유가 운용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기 때문이라면,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이 재무부 장관이 아니게 되면서 한국은행이 독립한 것과 같은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모두의 돈이어서 아무의 돈도 아닌 취급을 받는 상황을 끊을 때가 됐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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