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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김용균의 일곱번째 제삿날…엄마는 그곳에서 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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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숨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7주기 추모제가 10일 오전 태안화력 앞에서 열렸다. 김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발언 중간에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숨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7주기 추모제가 10일 오전 태안화력 앞에서 열렸다. 김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발언 중간에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곳’으로 가는 길, 용균 엄마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아들의 일곱번째 제삿날, 엄마는 태안에 떡을 해왔다. 용균을 떠나 보내고 억겁같던 시간을 함께해준 동지들과 떡을 나눌 때만도 그녀 표정은 묵묵했다. 그러나 발전소 안으로 들어가 “내 새끼 잡아간 그곳” 앞에 선 순간, 용균 엄마는 결국 또 무너졌다.



“그곳에서 울지 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10일 오전 충남 태안발전소(한국서부발전) 앞은 7년 전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24살 김용균을 추모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추모제를 앞둔 발전소 정문 앞에는 죽은 이가 산 사람을 위로하는 내용의 시 ‘내 영혼 바람 되어’가 노래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김용균은 2018년 12월10일 밤 홀로 밤샘 작업을 하다 태안화력발전소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었고, 다음 날 새벽 3시23분 숨진 채 발견됐다. 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계약직 노동자로 입사한 지 3개월 만이었다.



10일 오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김용균 7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이 고인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10일 오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김용균 7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이 고인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김용균재단이 김용균 사망 7주기를 맞아 준비해 추모객들과 나눈 떡. 최예린 기자

김용균재단이 김용균 사망 7주기를 맞아 준비해 추모객들과 나눈 떡. 최예린 기자


추모제 뒤 사람들은 열 맞춰 김용균이 숨진 공장동까지 행진했다. 공장동 밖으로 컨베이어벨트가 높게 설치돼 있었다. 하늘 밑 컨베이어벨트는 죽음의 공장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듯 보였다. 그 앞에서 선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이날 처음으로 입을 뗐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들을 잃은 사고 현장에 왔습니다. 저에게는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한 맺힌 이곳을 찾아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용균이 동료들이 아직도 생사를 넘나들며 일하고 있어 외면할 수 없습니다.”



마이크 잡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김 대표는 “나는 용균이 동상이라도 세워 발전소 정문을 지키고 있으면 서부발전 경영진들이 각성해 현장이 좀 더 안전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올해 김충현씨의 사고 소식은 큰 충격이었고, 겨우 견디고 있는 트라우마를 키웠다. 용균이와 충현님 잡아간 태안화력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더는 듣고 싶지 않다. 그런데 7주기를 하루 앞두고 가슴 답답하고 묵직한 고통을 다시 느끼게 될 줄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10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김용균 7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이 발전소 안으로 들어와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된 공장동까지 행진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10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김용균 7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이 발전소 안으로 들어와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된 공장동까지 행진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전날인 지난 9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석탄가스화복합발전 설비 폭발로 노동자 2명이 2도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서 지난 6월2일에는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충현씨가 작업 중 기계에 끼어 숨지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노동조합·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비슷한 사고 재발을 막는 방안을 논의할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날 추모제에서 이태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산업개발 발전지부장은 “어제 폭발 사고가 난 곳은 석탄을 가스화하는 설비로 우리나라에서 서부발전에만 있는 것이다. 2023년 1월에도 이 설비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는데 2년 뒤에 똑같은 사고가 재발한 것”이라며 “한국서부발전에서는 정규직 외에도 1차 하청업체 7천여명과 2차 하청업체 500여명이 일한다. 이런 다단계 하청 구조는 결국 아래로, 아래로 위험과 죽음을 내려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지부장은 “12월은 유가족에게 너무 혹독한 시간이지만, 이 죽음을 기억해 더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일터에서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며 “우리가 김용균·김충현이다”라고 외쳤다.



10일 7주기 추모제가 끝난 뒤에도 김용균의 동상이 태안화력발전소 앞을 지키고 있다. 동상에 어머니 김미숙씨가 이날 하고 온 ‘분홍 목도리’가 둘러져 있다. 최예린 기자

10일 7주기 추모제가 끝난 뒤에도 김용균의 동상이 태안화력발전소 앞을 지키고 있다. 동상에 어머니 김미숙씨가 이날 하고 온 ‘분홍 목도리’가 둘러져 있다. 최예린 기자


태안에서의 추모제 뒤 김미숙 대표와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서울로 이동해 이날 오후 2시부터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김용균 7주기 추모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전날 폭발 사고에 대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합동 현장감식도 진행됐다. 모두 떠난 자리, 태안화력발전소 7개 굴뚝은 여전히 굵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앞을 지키는 용균의 동상엔 엄마가 하고 온 ‘분홍 목도리’가 꽁꽁 둘러있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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