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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메모리 천민’도 띄웠다, 360% 치솟은 낸드의 반란

중앙일보 이우림.심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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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적인 데이터 수요…빛보는 ‘대용량 저장소’



■ 경제+

SK하이닉스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200% 넘게 오르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어떤가. 지난 2월 24일 미국 나스닥에 재상장한 후 주가가 364% 급등한 샌디스크(SanDisk)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USB 메모리 스틱을 만드는 그 회사다.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도 만만치 않다. 도시바가 2018년 분사 매각한 뒤 지난해 말에야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는데, 올해 주가가 무려 443% 올랐다. 이들의 공통점은 낸드플래시 공급업체라는 것. D램에 밀린 ‘영원한 조연’이자 ‘메모리 계층도’의 가장 아래에 위치해 ‘하층민’으로 일컬어지던 낸드 메모리의 운명이 인공지능(AI)을 만나 급변하고 있다.

USB 그 기업, 올해 주가 364% 올랐다

샌디스크는 USB 메모리 스틱과 SD 카드를 만드는 회사다. 2016년 미국의 데이터 저장장치 제조사 웨스턴디지털(WD)에 인수됐다가 올해 2월 플래시메모리 사업부문이 분사돼 나스닥에 재상장했다. 8월 말까지 주당 30~40달러대에 머물던 샌디스크의 주가의 지난 8일 주가는 225달러로, 분사 이후 기업가치는 4.6배가 됐다. 키옥시아의 주가 요동과 함께 낸드 시장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다. 핵심에는 낸드 기반 AI 데이터센터용 저장장치 ‘엔터프라이즈 SSD(eSSD, 기업용 SSD)’가 있다. AI 시대 폭발적인 데이터 수요에 힘입어 ‘저렴한 대용량 저장소’ 정도로 간주하던 낸드가 ‘고성능·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왕후장상’이 따로 있던 메모리, 그런데

메모리에는 ‘계층(hierarchy)’이 있다. 메모리의 성능·속도 순으로 연산장치(CPU, GPU 등) 옆자리를 차지하며 중요도와 우위를 나누는 이른바 ‘계급 구조’가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D램이 낸드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 크다. 전원을 끄면 기록이 날아가는 ‘휘발성’ 메모리인 D램은 속도가 나노초(ns, 10억분의 1초) 단위로 빠르기 때문에, 전원이 꺼져도 기록이 남는 ‘비휘발성’ 낸드보다 용량당 가격이 4~5배나 비싸다.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대기없이 데이터를 받을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D램은 물리적으로 이들 근처에 위치한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반면 낸드는 연산장치와 멀리 떨어진 ‘외곽’ 신세다. 용량이 크고 저렴하지만, 속도가 마이크로초(μs, 100만분의 1초) 단위로 느려서다. 마치 도심에서 먼 곳에 넓게 짓는 창고와 같다. 그런데 AI 거대언어모델(LLM) 크기가 급격히 커졌고, 연산을 위해 한 번에 들여다봐야 할 데이터의 양은 방대해졌다. 메모리 늘리기에 혈안이 된 AI 업계는 외곽의 SSD에까지 눈을 돌렸다. SSD 전문 팹리스 ‘파두’의 이지효 대표는 “엔비디아는 SSD에 지금의 30배 성능을 요구하는 ‘스토리지 넥스트’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전 세계 모든 낸드·컨트롤러 업체들이 이를 반영한 차세대 제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AI붐에 낸드가격 들썩

AI 추론 모델의 등장은 낸드 몸값에 불을 지폈다. 추론 모델은 사람처럼 논리와 맥락을 따라가며 복합적으로 사고하기에 필요한 데이터양이 대거 늘어난다. 게다가 이용자가 늘면 메모리 사용량은 폭증한다. 지난달 ‘SK AI 서밋’에서 박경 SK하이닉스 비즈인사이트 담당 부사장은 “필요한 메모리 용량을 예측할 수 있는 AI 학습과 달리, 추론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며 “HBM(고대역폭메모리)부터 SSD까지 모두 쓰면서 이를 최적화하는 게 숙제”라고 말했다.

추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도입된 ‘검색 증강 생성(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도 낸드 수요를 부른다. AI 모델이 엉뚱한 대답을 내놓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RAG는 사내 문서나 데이터베이스 같은 ‘정확한 참고 자료’를 기존 학습 데이터와 결합해 활용한다. RAG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방대한 외부 데이터를 컴퓨터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장해 둬야 한다. 텍스트·문서·이미지 등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고차원 공간 좌표(벡터)로 변환해 저장하는 벡터 DB가 이때 쓰이는데, 벡터 DB를 저장하는 기반이 바로 대용량·고성능 SSD다.

고품질 쌍끌이, 고밀도+컨트롤러

낸드는 숙제를 안았다. 저장 용량을 더 늘리면서 가격은 낮추고 성능과 내구성은 끌어올려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낸드 공급업체들이 고용량 ‘QLC(Quadruple Level Cell, 4개)’에 집중하고 있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최소 단위인 셀은 1개에 몇 개의 정보(비트)를 저장하느냐에 따라 나뉘는데 이론적으로 QLC는 SLC(Single Level Cell, 1개)보다 동일 면적에 4배 용량을 저장할 수 있어 효율과 가격에서 뛰어나다. 문제는 이렇게 데이터가 밀집할수록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셀 간 간격이 좁아지면서 간섭 현상 발생 등 오류가 일어날 수 있고, 내구성도 약해진다. 컨트롤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SSD의 두뇌’다. 데이터를 언제, 어디에 넣고 뺄지 결정하고 오류를 수정해 주는 게 컨트롤러의 역할이다. SK하이닉스는 2010년대까지만 해도 낸드 경쟁력에서 삼성전자와 격차가 컸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20년 인수 합병에 나섰다. 약 90억 달러(당시 10조2000억원)에 인텔의 낸드 사업부(현 솔리다임)를 인수하기로 했는데, 당시 인텔이 보유한 컨트롤러 최적화 기술도 함께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한동안 솔리다임은 누적 적자만 7조원을 넘겨 그룹의 골칫거리였지만, 최근 1~2년 새 기업용 SSD 수요가 늘어나며 상황이 반전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기업용 SSD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1분기 20.8%에서 2분기 26.7%로 상승하며 1위 삼성전자(34.6%)와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HBM은 알겠는데, HBF는 무엇?

반도체 업계는 고성능·대용량을 동시에 만족할 차세대 낸드에 주목한다. 대표적인 게 낸드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고대역폭플래시(HBF, High Bandwidth Flash)다. 실리콘관통전극(TSV)을 이용해 D램을 수직 적층한 HBM처럼, 낸드도 3차원으로 쌓아 구멍을 뚫고 고속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기존 SSD보다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HBF는 HBM보다 속도는 느려도 저장 용량이 크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추론 작업에 필요한 데이터를 SSD에 저장해 놓고 불러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HBF를 HBM 바로 뒤에 붙이면 속도가 빨라진다”고 말했다.

지난 8월 SK하이닉스는 샌디스크와 함께 HBF 기술 표준화를 추진한다고 밝혔고, 양산 목표는 2027년 초다. 송재혁 삼성전자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 10월 ‘반도체대전(SEDEX) 2025’에서 “로직이 먼저 간 길을 이제 D램과 낸드가 따라가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낸드는 D램보다 열에 약한데 AI 서버의 열기를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낸드는 데이터를 쓰고 지울 수 있는 총합이 10만회 이하라 수명이 D램보다 짧은 점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중국의 움직임도 변수다. 이지효 파두 대표는 “삼성·SK는 HBM에 집중하느라, 키옥시아·샌디스크는 2023년 낸드 불황의 아픈 기억 때문에 각각 낸드 투자에 미온적인데, 오직 중국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만 공격적으로 낸드 설비에 투자하고 있다”라면서 “YMTC의 낸드 점유율이 충분히 커지는 몇 년 후가 진정한 승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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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메모리 천민’도 띄웠다, 360% 치솟은 낸드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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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림·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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