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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역전의 블루칼라'

이데일리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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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영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AI 시대 기술 전문직의 가치, 英 '이코노미스트'도 주목
숙련인력은 국가 핵심경쟁력, 지속 가능한 생태계 만들 때
[이우영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관심을 끈 드라마가 있다.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다. 드라마에는 김 부장(류승룡 분)이 아산 공장 안전팀장으로 밀려간 뒤 백 상무(유승목 분)와 술자리를 가지는 장면이 나온다. 백 상무는 김 부장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기분을 내는 거야.”

‘일’과 ‘일하는 기분’의 차이는 무엇일까. 완수해 내려는 책임과 프로젝트의 성취를 동시에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11월 방송된 KBS 다큐 인사이트 ‘역전의 블루칼라’는 기존 ‘블루칼라’(생산·기능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선진국형 산업구조로의 변화와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인간의 욕구 등을 반영한 패러다임 변화가 블루칼라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현장 기술직으로 눈을 돌리는 변화가 눈에 띄었다. ‘부가가치가 있는 일’을 찾고 거기서 땀 흘려 일하는 만큼 보상을 받는 것에 만족하는 젊은 블루칼라들. ‘노동하는 인간’을 넘어 ‘무엇인가 가치 있는 물건이나 프로젝트 결과물을 만드는 인간’으로 본인이 설계·기획하고 방법과 절차를 정하고 직접 손으로 만들어 완성한 제품을 보며 그들은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욕구의 실현이고 그들은 그런 일들을 현장에서 찾았다. 블루칼라 직종의 임금 상승과 사회적 재평가로 대학에 가지 않고도 더 나은 보상과 시간·임금·작업조건 등에 관한 자기 결정권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됨에 따라 2024년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블루칼라 황금기, 즉 ‘블루칼라 보난자’ 현상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블루칼라 보난자는 전통적으로 저임금·단순노동직으로 여겨졌던 블루칼라 일자리의 가치와 임금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 로봇 등의 기술 발전은 일자리에 대한 암울한 인식을 더욱 확산시켜 왔다. ‘학력’이나 ‘사무직’이 안정의 상징이 되지 않는 시대에 세련된 도배, 고급스러운 미장, 고정밀 기계 조립 등 사례는 이전의 저숙련·저임금의 단순노동이 아니라 기술 기반 전문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숙련기술인의 역할과 중요성에 비해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 기술 전수 구조도 취약하고 현장의 장인들이 은퇴하면 그 노하우는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젊은 세대가 현장으로 들어오고 있음에도 지속 가능한 직업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들이다.


숙련기술인과 장인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만 그들이 쌓아 올린 기술과 경험도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화성에 식민지 건설을 위해 창업한 스페이스X가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첫 번째 기체는 ‘팰컨9’(Falcon 9)이다. 머스크 CEO는 현장에서 실패를 통한 배움을 강조하면서 발사체의 부품 중 대부분을 자체 제작했다. 부품 간의 연계성을 높이고 불량률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플랫폼 강국 미국에서도 블루칼라 노동이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기술 노동으로 당연히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 숙련은 21세기 경제의 글로벌 통화’라고 표현한다. 최근 미국의 관세 협상에서 보듯 금전적 투자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공장을 시공하고 장비를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는 경험이 풍부한 숙련 인력, 또한 숙련 기술을 전수할 숙련 지도자가 있느냐가 금전적으로 환산할 만한 글로벌 통화의 한 예가 아닐까. 결국 한 나라의 숙련 역량 총합은 그 나라의 외환 보유고만큼이나 중요한 자산이자 국가 경쟁력이라고 볼 수 있다.

‘역전의 블루칼라’가 보여준 장면들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한국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숙련기술인이자 장인의 손끝에서 결정된다. 블루칼라의 역전은 이미 시작됐다. 남은 과제는 그 변화를 사회가 제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기술을 배우는 청년, 현장의 장인을 존중하는 문화. 이것이 우리 산업의 성공 DNA 회복이다. 기술 배움에서 의미를 찾아 일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장인의 나라를 향한, 대한민국 숙련기술 르네상스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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