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올겨울도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영하의 한파 예보가 무색하게 며칠 사이 기온이 치솟아 겨울비가 내렸다. 폭염에 이어 ‘이상한 겨울’이 새로운 보통이 되어버린 지금, 기후위기의 시대다.
얼마 전 의료인류학자인 경희대학교 김태우 교수의 책 '몸이 기후다'를 읽었다. 그는 기후가 북극의 빙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시는 공기와 햇볕, 발밑의 땅을 통해서도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말한다. '몸이 기후위기를 만들고, 바로 그 몸이 위기의 기후를 앓는다'는 문장은, 올 한 해 뉴스 속 동물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무너지는 기후가 가장 약한 몸에 남긴 흔적처럼 보였다.
흙을 갈고, 유기물을 분해해 땅을 살리던 지렁이는 폭우와 폭염 사이에서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 말라붙어 사라지고 있었다. 이상 고온으로 개화 시기가 뒤엉키자 야생벌들이 굶어죽고, 꿀벌들은 인간을 위한 과로사로 죽어갔다. 흙과 꽃, 우리의 식탁을 이어주던 작고 부지런한 몸들은 생태계의 기반이다.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후위기의 경고징후들이 보이고 있다. 사진은 올해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해 소방대원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뉴욕의 브라이언트 공원에서 한 시민이 꽁꽁 얼어붙은 분수대를 촬영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뉴욕=AFP 연합뉴스 |
올겨울도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영하의 한파 예보가 무색하게 며칠 사이 기온이 치솟아 겨울비가 내렸다. 폭염에 이어 ‘이상한 겨울’이 새로운 보통이 되어버린 지금, 기후위기의 시대다.
얼마 전 의료인류학자인 경희대학교 김태우 교수의 책 '몸이 기후다'를 읽었다. 그는 기후가 북극의 빙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시는 공기와 햇볕, 발밑의 땅을 통해서도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말한다. '몸이 기후위기를 만들고, 바로 그 몸이 위기의 기후를 앓는다'는 문장은, 올 한 해 뉴스 속 동물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무너지는 기후가 가장 약한 몸에 남긴 흔적처럼 보였다.
흙을 갈고, 유기물을 분해해 땅을 살리던 지렁이는 폭우와 폭염 사이에서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 말라붙어 사라지고 있었다. 이상 고온으로 개화 시기가 뒤엉키자 야생벌들이 굶어죽고, 꿀벌들은 인간을 위한 과로사로 죽어갔다. 흙과 꽃, 우리의 식탁을 이어주던 작고 부지런한 몸들은 생태계의 기반이다.
겨울 산에서는 멸종위기 산양이 떼죽음을 당했다. 폭설을 피해 내려온 길 앞을 막은 것은 눈이 아니라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 울타리였다. 내려올 힘도, 넘을 힘도 없는 산양들은 철망 앞에서 굶주리고 얼어붙은 채 쓰러졌다. "눈이 많이 왔다"는 한 줄의 기상 뉴스 뒤에는 이런 몸의 이야기가 붙어 있었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에어컨 아래 냉방병을 걱정하는 반려동물이 있는 반면, 그늘막 하나 없는 마당에 묶인 개는 뜨거운 바닥의 열기를 온몸으로 버텨야 했다. 환기 안 되는 축사의 닭과 돼지, 쪽방과 지하방의 노인, 뙤약볕 아래를 오가는 택배 노동자에게 폭염은 선택지가 없는 열이었다. 같은 더위라도, 피할 곳이 있는 몸과 없는 몸에 떨어지는 무게는 전혀 달랐다. 기후위기는 환경을 바꿀 힘이 없는 몸, 묶인 동물과 가난한 인간에게 가장 먼저, 가장 치명적으로 도착한다.
이 동물들은 온몸으로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를 미리 겪고 있는 예언자일지도 모른다. 달라진 기후 속에서 우리는 누구의 안락함을 우선 지키고, 누구의 불편과 고통은 당연한 것처럼 넘겨왔는가.
내년에는 기후 이야기를 그래프나 숫자 대신, 기후를 견디고 있는 몸을 살피는 것에서 시작해보자. 야생동물의 길을 터주고, 벌을 위한 나무를 심는 데 예산을 쓰자. 폭염 속 묶인 개를 보고 기꺼이 민원을 넣는 수고와 공장식 축산과 기후를 함께 고민하는 소비도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와 동물을 함께 살리는 가장 구체적인 기후 행동일 것이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