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소아내분비학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전국 학부모를 대상으로 ‘바른 성장 및 건강한 생활 습관 실천에 대한 사회적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우리 사회에서 성장호르몬이 ‘키 크는 주사’로만 인식되며 과열 양상을 보이는 현실이 드러났다. 기본적인 생활 습관 개선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주사 치료에 먼저 의존하는 분위기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이영준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소아내분비학회 부회장)를 만나 성장호르몬 치료의 오해와 진실에 관해 물었다.
―요즘 부모들의 자녀 ‘키 성장’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
“관심이 굉장히 높다. 성적뿐만 아니라 외모, 그중에서도 키가 하나의 경쟁력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됐다. 특히 남아에서 ‘키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소아는 성인과 달리 ‘성장’과 ‘발달’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소아 내분비 의사는 단순히 키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정상적인 성장 곡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성장호르몬 치료는 키가 작은 모든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미용 치료’가 아니라 의학적으로 성장에 문제가 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다.”
이영준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소아내분비학회 부회장)를 만나 성장호르몬 치료의 오해와 진실에 관해 물었다.
이영준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아이 성장에 중요한 것은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운동 등 기본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은심 기자hongeunsim@donga.com |
―요즘 부모들의 자녀 ‘키 성장’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
“관심이 굉장히 높다. 성적뿐만 아니라 외모, 그중에서도 키가 하나의 경쟁력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됐다. 특히 남아에서 ‘키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소아는 성인과 달리 ‘성장’과 ‘발달’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소아 내분비 의사는 단순히 키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정상적인 성장 곡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성장호르몬 치료는 키가 작은 모든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미용 치료’가 아니라 의학적으로 성장에 문제가 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다.”
―아이들 성장 환경과 생활 습관은 예전보다 좋아졌나, 나빠졌나.
“전반적으로 나빠졌다. 10년 전에도 비슷한 인식 조사를 했는데 그때보다 개선된 점이 거의 없다.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미디어·스마트폰 노출 최소화인데 이 기본이 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공부량과 미디어 노출은 늘었는데 수면 시간은 오히려 줄었다. 반면 성장호르몬 주사 사용은 크게 늘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사용량이 급증했는데 통계를 보면 코로나 대유행 전후로 성장호르몬 처방이 약 5배 증가했다. 아이들 수는 줄어들고 있는데 치료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기본 생활 습관이 나빠졌는데 치료 필요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경우까지 주사가 쓰이는 것은 분명 문제다.”
―대학병원과 동네 병원에서 이뤄지는 성장호르몬 치료에 차이가 있나.
“과거에는 성장호르몬 치료가 주로 대학병원에서 시행됐다. 저신장에 해당하거나 성장호르몬 결핍·염색체 이상 등 의학적으로 치료가 꼭 필요한 아이를 대상으로 한 치료가 대부분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성장호르몬 처방이 많이 늘어난 부분을 보면 대학병원보다는 동네 병원 증가가 더 크다. 지금은 소아청소년과뿐만 아니라 정형외과, 영상의학과,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등 다양한 진료과에서 성장호르몬을 사용하고 있다. 개원가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성장호르몬이 하나의 ‘아이템’이 된 측면도 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치료가 시작되고 치료 기준이 느슨해질 위험이 있다.”
―‘저신장’은 어떻게 진단하고 성장호르몬이 꼭 필요한 아이는 누구인가.
“저신장은 같은 나이·성별 아이들 가운데 키가 3% 이하인 경우를 말한다. 성장 도표에서 1∼100등으로 키를 세웠을 때 앞에서 3등 안에 드는 가장 작은 그룹이다. 우리나라 성장 도표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이 있어 나이별·성별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소아는 같은 키라도 나이에 따라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상대적인 기준을 써야 한다. 저신장이라고 해서 모두 질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질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밀 평가가 필요하다. 저신장으로 내원하면 우선 빈혈·만성질환 등 전신 질환 여부를 확인하는 기본 검사를 한다. 이후 입원해 성장호르몬 자극 검사를 통해 분비 상태를 보고 필요한 경우 염색체·유전자 검사까지 시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호르몬 결핍이나 염색체 이상이 확인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성장호르몬 치료 대상이 된다. 성장호르몬은 키뿐 아니라 전신 대사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이 치료받지 않으면 건강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치료가 필요한 아이와 필요하지 않은 아이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성장호르몬도 엄연히 약이다. 필요한 아이, 써도 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아이, 절대 쓰면 안 되는 아이를 구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판단은 반드시 검사와 진료를 거친 의료진이 해야 한다. 문제는 ‘쓰면 안 되는 아이’에게 투여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아이’까지 성장호르몬을 맞는 비율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성장호르몬이 필요 없는 아이도 주사를 맞으면 어느 정도 키가 더 자랄 수 있다. 다만 그 효과는 저신장 아이들보다 적고 정확한 임상 근거도 없다. 연구는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을 대상으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기본적인 생활 습관 개선보다 성장호르몬 주사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적 비용이 커질 뿐 아니라 아무리 안전한 약이라도 부작용 가능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최근 말단비대증 같은 부작용 사례가 과장되게 언급되는데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치료를 통해 얻는 이익이 잠재적 위험보다 큰지를 따지는 것이다. 이 점은 국제 성장호르몬 치료 데이터베이스(KIGS) 등 수십 년간의 장기 연구에서 이미 상당 부분 검증돼 있다. 근거 없는 공포가 확산되면 정작 치료가 꼭 필요한 아이들이 치료 기회를 놓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아이의 성장호르몬 치료를 고민하는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먼저 ‘키가 작다’라는 개념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3% 이하인 아이는 전교에 1∼2명 있을 정도로 적은 비율인데 요즘 부모들은 아이 키가 평균 이하면 작다고 생각한다. 남자 평균 키가 174㎝인데 목표 키를 180㎝ 이상으로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적인 기준과 이상이 크게 벌어져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성장 속도다. 사춘기 전 초등학교 3∼4학년까지는 1년에 최소 4㎝ 이상 자라야 한다. 대개 5㎝ 이상 크지만 1년에 2∼3㎝ 정도만 자라는 아이는 현재 키가 작지 않더라도 ‘위험 신호’로 봐야 한다. 키가 크는 속도가 떨어지면 몸 어딘가에 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부모들이 ‘성장 급등기’를 놓칠까 봐 조급해져 먼저 주사를 맞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소아 내분비 전문의에게 성장 평가를 받는 것이 첫 단계다. 키를 키우기 위한 치료를 논의하기 전에 아이가 자신의 유전적 잠재력 안에서 정상적인 성장곡선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또래 100명 중 20번째로 작더라도 부모 키가 작은 편이라면 질환이 아니라 체질일 수 있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는 10여 년 전부터 ‘하하스마일건강 바른 성장 캠페인’을 통해 바른 수면, 운동, 식사를 강조해 왔다. 아이들은 밤에 최소 8시간 이상 자야 하고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 성장호르몬 주사보다 먼저 지켜야 할 기본이다. 병원에서 성장 평가를 받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성인이 건강검진을 받듯 아이들도 성장기에는 ‘성장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무조건 성장호르몬부터 맞겠다’는 생각은 내려놓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성장호르몬은 꼭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치료지만 사회 전체가 키 욕망에 끌려 과잉 사용하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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