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함이 바로 아는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만으로는 참된 앎이라 할 수 없고,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비로소 참된 앎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공자의 이 말에는 중요한 덕목 하나가 숨어 있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 필요한 덕목, 바로 용기다. 사실 공자의 이 말을 곧이곧대로 행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기왕이면 알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것이, 모르고 있음은 가급적 숨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이라도 사람들이 나를 그것만 알고 나머지는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저어되기도 한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있어야 내가 어디까지만 안다고 함을, 그 밖에는 모른다고 함을 진솔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용기 덕분에 참된 앎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단지 모름에 대해서만 이런 것도 아니다. 잘못 알고 있음을 인정하는 데도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공자의 계승자 순자는 사람들이 잘못된 앎에 빠지는 원인으로 마음이 무언가에 가려져 있음을 들었다. 욕망에 가려지기도 하고 혐오에 가려지기도 하는데, 그렇게 마음이 가려지면 흰 것과 검은 것이 눈앞에 있어도 이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아는 것은 고작 한 모퉁이에 불과한데 이를 토대로 다른 모퉁이에 대해서도 안다는 착각에 안주한다고도 한다. 공자가 한 모퉁이를 들어 보였을 때 나머지 세 모퉁이를 헤아릴 줄 모르면 다시 가르치지 않았다고 단언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익숙한 앎이 가려진 마음에서 비롯된 잘못된 앎임을 인정하고 이를 바꿈에는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용기는 이처럼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 꼭 갖춰야 하는 역량이다. 용기는 애초부터 완력이나 무력 같은 물리력하고만 연결되어 있지 않았음이다. 공자가 인자(仁者), 그러니까 어진 이는 반드시 용기를 지니고 있다고 단언한 까닭이다. 나아가 “인간이 인간으로서 설 수 있음은 믿음과 지혜와 용기가 있기 때문”(<춘추좌전>)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우뚝 섬이 바로 인간다움의 무늬, 곧 인문이기에 그러하다.
김월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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