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비상계엄이 국회의 제동 없이 관철되어 장기 통치로 굳어졌다면, 한국 경제는 회복 불능의 늪에 빠졌을 것이다. 대외 의존도가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상회하는 우리 경제 구조상, 민주주의 붕괴는 곧 경제 생태계의 총체적 와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계엄 성공은 곧 국가 신인도의 파산이다. 무디스나 S&P 같은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강등은 즉각적이었을 것이며, 한국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CDS 프리미엄은 폭등했을 것이다. 이는 자본 조달 비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해 투자 여력을 마비시키고, 건실한 기업들마저 유동성 위기로 내몰아 연쇄 부도를 촉발했을 것이다. 단 6시간의 ‘계엄 소동’에도 환율과 증시가 요동쳤던 사실은 우리 경제가 정치적 리스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방증한다. 하물며 계엄이 현실화되었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셀 코리아’는 걷잡을 수 없었을 테고, 코스피지수는 2000선 아래로 추락했을 것이다. 환율 1600원 돌파는 시간문제였으며, 수입물가 폭등은 서민 경제를 강타해 상당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금융 충격보다 더욱 뼈아픈 것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성장동력이 뿌리째 뽑혀 나간다는 점이다. 총칼로 권력을 틀어쥔 독재 세력은 본능적으로 투명하고 자유로운 시장 질서를 거부한다. 그들은 자신의 입맛대로 조작할 수 있는 통제 경제를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필리핀의 사례를 통해 정치권력이 시장을 포획했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72년 계엄 선포 후 9년 동안 헌정을 중단시킨 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는 ‘신사회’ 건설이라는 기만적인 슬로건 아래 국가 경제를 철저히 사유화했다. 코코넛과 설탕 등 국가의 돈줄이 되는 기간산업을 강제로 통폐합한 뒤, 대학 동창이나 골프 친구 같은 측근들에게 독점 운영권을 하사하는 전형적인 ‘정실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부인 이멜다 역시 마닐라 주지사와 장관직을 겸임하며 국정에 무분별하게 개입해 국고를 탕진했고, 수천 켤레의 구두로 상징되는 극단적 사치와 국부 유출을 일삼았다. 그 결과 아시아 선두권이었던 필리핀 경제는 정권 말기인 1984년부터 2년 연속 -7.3%라는 충격적인 역성장을 기록하며 ‘아시아의 병자’로 전락했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 또한 이와 판박이로 흘러갔을 것이다. 김건희를 정점으로 한 비선 세력들이 헌법 위에 군림하며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졌을 공산이 크다. 검찰을 동원해 기업을 길들이고, 정권에 줄을 선 소수 기업에만 공기업 민영화 참여권이나 금융 특혜를 몰아주는 ‘한국형 정실 자본주의’의 서막이 열렸을 것이다. 결국 국가 전체가 거대한 부패의 사슬에 묶여 질식하는 참담한 미래, 그것이 계엄이 우리에게 청구하려 했던 계산서였다.
더욱이 정치적 리스크의 폭증은 한국을 철저한 국제적 고립무원으로 내몬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오픈AI의 샘 올트먼 같은 세계 경제의 리더들이 정치적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계엄 국가에 발을 들일 이유는 만무하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의 생명줄은 예측 가능한 시스템과 자유로운 연구 환경이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숨통을 조여오는 곳에서 혁신은 불가능하며, 결국 글로벌 자본은 한국을 외면하고 핵심 인재들은 미련 없이 해외로 떠나는 ‘인재 엑소더스’가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 구조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는 곧 경제적 사형 선고다. 미국과 유럽 등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 국가들은 독재로 회귀한 계엄 정권에 대해 냉혹한 경제 제재와 무역 장벽을 세웠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 파고까지 겹치게 된다. 한국은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명분으로 제재를 받는 동시에, 무역 보복의 표적이 되는 이중고에 직면했을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들은 ‘정치적 위험이 높은 불안한 파트너’로 낙인찍혀 주요 계약에서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금융 충격보다 더욱 뼈아픈 것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성장동력이 뿌리째 뽑혀 나간다는 점이다. 총칼로 권력을 틀어쥔 독재 세력은 본능적으로 투명하고 자유로운 시장 질서를 거부한다. 그들은 자신의 입맛대로 조작할 수 있는 통제 경제를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필리핀의 사례를 통해 정치권력이 시장을 포획했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72년 계엄 선포 후 9년 동안 헌정을 중단시킨 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는 ‘신사회’ 건설이라는 기만적인 슬로건 아래 국가 경제를 철저히 사유화했다. 코코넛과 설탕 등 국가의 돈줄이 되는 기간산업을 강제로 통폐합한 뒤, 대학 동창이나 골프 친구 같은 측근들에게 독점 운영권을 하사하는 전형적인 ‘정실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부인 이멜다 역시 마닐라 주지사와 장관직을 겸임하며 국정에 무분별하게 개입해 국고를 탕진했고, 수천 켤레의 구두로 상징되는 극단적 사치와 국부 유출을 일삼았다. 그 결과 아시아 선두권이었던 필리핀 경제는 정권 말기인 1984년부터 2년 연속 -7.3%라는 충격적인 역성장을 기록하며 ‘아시아의 병자’로 전락했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 또한 이와 판박이로 흘러갔을 것이다. 김건희를 정점으로 한 비선 세력들이 헌법 위에 군림하며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졌을 공산이 크다. 검찰을 동원해 기업을 길들이고, 정권에 줄을 선 소수 기업에만 공기업 민영화 참여권이나 금융 특혜를 몰아주는 ‘한국형 정실 자본주의’의 서막이 열렸을 것이다. 결국 국가 전체가 거대한 부패의 사슬에 묶여 질식하는 참담한 미래, 그것이 계엄이 우리에게 청구하려 했던 계산서였다.
더욱이 정치적 리스크의 폭증은 한국을 철저한 국제적 고립무원으로 내몬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오픈AI의 샘 올트먼 같은 세계 경제의 리더들이 정치적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계엄 국가에 발을 들일 이유는 만무하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의 생명줄은 예측 가능한 시스템과 자유로운 연구 환경이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숨통을 조여오는 곳에서 혁신은 불가능하며, 결국 글로벌 자본은 한국을 외면하고 핵심 인재들은 미련 없이 해외로 떠나는 ‘인재 엑소더스’가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 구조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는 곧 경제적 사형 선고다. 미국과 유럽 등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 국가들은 독재로 회귀한 계엄 정권에 대해 냉혹한 경제 제재와 무역 장벽을 세웠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 파고까지 겹치게 된다. 한국은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명분으로 제재를 받는 동시에, 무역 보복의 표적이 되는 이중고에 직면했을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들은 ‘정치적 위험이 높은 불안한 파트너’로 낙인찍혀 주요 계약에서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되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윤석열의 계엄이 성공했다면, 한국 경제는 금융 시스템 붕괴, 만연한 정실 부패 그리고 국제적 고립이라는 삼중고에 갇혀 질식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경기 침체가 아니라,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영구적으로 훼손하고 선진국 대열에서 탈락시키는 재앙이었다. 우리 증시의 고질병이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이제 회복 불가능한 ‘코리아 리스크’로 굳어졌을 것이며, 대한민국은 끝내 경제 회생의 희망조차 찾기 어려운 긴 암흑기로 들어섰을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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