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진 도쿄특파원 |
최근 만난 일본 정치 전문가는 중일 갈등의 향방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중국은 이미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고, 일본 역시 물러서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국회 발언으로 시작된 양국 갈등이 한달째 이어지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달 7일 국회에서 대만 유사시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고,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가 다음 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에게 달려드는 그 더러운 목을 베지 않을 수 없다"는 극언을 하면서 양국 신경전이 시작됐다.
중국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중지와 여행·유학 자제령 등 한일령을 내리며 다카이치 총리 발언 철회를 압박하고 있지만 일본 역시 물러서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로 일본 정부 내 인사가 중국과 물밑교섭을 진행하며 발언 철회를 권고했지만 다카이치 총리가 단호히 거부했다는 전언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기댈 언덕'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번 사태에 뒷짐을 지고 있어 미일 관계까지 심란해지고 있다. 야마다 시게오 주미 일본대사가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 더 많은 지지를 표명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를 두고 중일 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동맹국인 미국이 보여준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일본 정부 내부의 실망감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다카이치 총리와의 통화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보도해 일본 측의 실망감은 더 커졌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지지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다카이치 총리가 더욱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지지층 결집과 방위력 증강 명분 확보를 위해 정치적 계산에 따라 논란을 의도적으로 유발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다카이치 총리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다"고 귀띔했다. 위기를 고조시키면 방위력 증강 명분이 생기고, 핵을 가진 중국에 맞서 일본도 핵을 논의해야 한다는 논리도 강화된다. '강한 일본'을 추구하는 다카이치 내각으로서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충분히 현재 상황을 활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양국이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되는 이런 대립구도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상호 불신과 오해가 갈등을 확대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일본도 중국에 안 가고, 중국도 일본에 안 오게 된다. 일본 국회의원들도 중국을 거의 가지 않아서 중국의 실제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행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과거 사례를 보면 경각심이 더욱 커진다.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간 충돌 사건이 발생했는데 양국 모두 상대국 의도와 행동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언론과 국내 정치 압력까지 더해져 갈등이 급격히 고조됐다.
2013년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ADIZ) 충돌도 유사하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ADIZ를 설정하자 일본이 대응했지만 서로의 전략적 의도를 오해하며 긴장이 지속됐다.
이번 사례는 한국 외교가 단순한 중립선언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균형외교를 주장하더라도 일본 내 정치 구조와 지도자 성향, 중국의 장기 전략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상대국 내부 정치와 외교전략의 변수를 면밀히 분석하지 않으면 단순한 균형외교는 선언적 의미에 그칠 수 있지 않을까.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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