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쿠팡을 둘러싼 민심의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분노가 단순한 ‘데이터 유출 사고’ 때문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정보가 유출된 규모가 크기 때문만도 아니다. 더 깊은 층위에서 국민이 문제 삼는 부분은 바로 사고 이후 쿠팡이 보인 기업의 태도다. 사람들은 큰 기업이 실수하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실수 이후 보여야 할 책임의 자세를 잃는 순간, 그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은 한순간에 뒤바뀐다. 이번 사태에서 민심이 요구한 것도 바로 그 ‘태도’다.
가장 큰 오해는 ‘국민이 화난 이유는 대규모 정보 유출 때문’이라는 단순화한 해석이다. 많은 시민은 이미 온라인 플랫폼이 공격받을 수 있고 첨단 보안 시스템도 무너지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분노가 커진 이유는 쿠팡이 이번 사건 초기에 사용한 언어와 대응 방식 때문이다. 처음에 ‘노출’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뒤늦게 ‘유출’로 고쳐 쓴 대목,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짧은 시간 안에 보이지 않게 된 상황 등은 ‘사고 자체를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남겼다.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변명보다 명확한 책임의 인정이었다.
기업의 신뢰는 완벽함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대하는 기본적인 상식적 태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장면이었다.
기업의 신뢰는 완벽함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대하는 기본적인 상식적 태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장면이었다.
게다가 국민이 더욱 강하게 문제 삼은 지점은 진짜 의사결정권자의 부재다. 공식적으로 사과한 사람은 한국 법인 대표였지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 쿠팡의 실제 리더십 구조는 다르다. 실질적 권한을 쥔 인물이 직접 나서지 않는 상황은 민심에 뚜렷한 불신으로 읽힌다. 권한 있는 자가 책임을 설명해야 신뢰가 회복되는 것은 인간 심리의 기본 원리다. 사람들은 책임 있는 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확인해야 안심한다. 마치 학교에서 사고가 나면 담임이 아니라 교장이 나서야 정직하게 문제를 마주하는 느낌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고객의 불안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기업 중심의 설명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정보 유출을 경험한 사람들은 ‘내 정보가 어디까지 새 나갔는가’, ‘향후 어떤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가’, ‘쿠팡은 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원했다. 그러나 쿠팡의 커뮤니케이션은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회사의 절차나 설명에 초점을 맞춘 듯 보였고 이는 사람들의 감정적 거리감을 더 키웠다.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피해자의 감정을 우선 배려하는 태도’다. 쿠팡이 이를 간과한 순간 국민의 신뢰는 더 멀어졌다.
그러나 민심이 진짜로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사과나 사상 최대 규모의 유출이라는 숫자상의 충격이 아니다. 사람들은 구체적인 후속 조치를 요구한다. 보안 시스템을 어떻게 강화하는지, 내부 권한 관리 체계는 어떻게 바뀌는지, 재발 방지를 위한 로드맵은 무엇인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 대응 연구에서도 ‘선언적 사과’보다 ‘행동적 사과’가 신뢰 회복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쿠팡의 사과가 공허하게 들린 이유는 행동의 청사진이 충분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쿠팡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위치 변화가 깔려 있다. 쿠팡은 단순한 쇼핑 플랫폼을 넘어 한국인의 일상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국민의 생필품 구매 방식, 지역 물류 시스템, 생활 구조까지 바꿔놓은 기업이다. 인프라가 된 기업에는 인프라다운 책임이 요구된다. 이 기대를 외면하는 순간 소비자의 불안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폭넓은 사회적 불신으로 번진다. 민심이 ‘쿠팡다운 책임’을 요구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모든 흐름을 정리하면 민심의 요구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실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실수를 대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국민은 쿠팡이 투명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서며 고객 중심에서 재발 방지 대책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기를 원한다. 쿠팡이 이 요구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느냐가 앞으로의 신뢰 회복을 결정할 것이다. 플랫폼 시대의 거대 기업은 단순히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