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문화선임기자 |
이 화가는 어떤 이유로 숲을 계속 그리게 됐을까. 서울 경복궁 인근의 리안갤러리에서 신경철(47)의 개인전 ‘공기 사이의 빛(Light Between Air)’(30일까지)을 보며 떠오른 질문이었습니다. 전시장에 걸린 30여 점의 작품이 한결같이 나무와 덤불이 있는 풍경을 담고 있는데, 각기 다른 호흡으로 그려진 회화와 드로잉이 흥미롭습니다.
신경철, T-HERE-WSP202402, 2024, Acrylic & Pencil on linen, 162.1x259.1㎝. [사진 리안갤러리] |
그의 회화에서 숲은 마치 꿈이나 기억 속의 한 장면 같습니다. 차분한 한 가지 색으로 칠해진 흐릿한 형상은 시간이 멈춰 버린 공간을 재현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효과 뒤엔 독특한 작업 과정이 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작가는 흰색·금색·은색·베이지색 등으로 바탕을 칠한 뒤 붓의 마른 터치감만으로 형상을 표현하고, 나중에 물감이 칠해진 곳들의 가장자리를 연필 선으로 그려 마무리합니다. 밑그림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색을 얹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반대순서입니다.
그의 작업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빛’입니다. 그의 숲에는 공기와 함께 빛의 입자가 떠다니는 듯합니다. 금·은빛 바탕 안료와 그 위에 얹힌 물감, 연필로 그은 선들은 보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보입니다. 이는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그만이 경험하는 환경에서 나온 산물입니다. “시력이 나빠져 12년 전 렌즈 삽입술을 한 뒤 눈부심이 심해졌다”는 그는 “한때 좌절했지만, 결국 내 시선으로 포착한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눈에 겹쳐 보이고, 흐릿하고, 파편화돼 보이는 풍경과 빛은 관객에게 색다른 숲을 만나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또 주목할 것은 작가 스스로 “날 것의 에너지를 보여준 느낌”이라고 소개한 대규모 드로잉 시리즈입니다. 종이 위에 바탕색을 바른 뒤 목탄으로 선을 그리고, 손으로 문지르는 방식으로 완성한 드로잉은 정제된 화면의 회화와는 달리 꿈틀거리는 숱한 선들이 특징입니다. 회화가 멀리서 본 숲을 담았다면, 드로잉은 그 안의 치열한 생명의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왜 숲인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대구 작업실에서 일하는 지금까지 숲은 늘 내 가까이 있었다”며 “숲은 늘 나의 상상을 자극한다. 그곳에서 보는 빛과 그림자 모든 게 경이롭다”고 답했습니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감탄할 줄 아는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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