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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민연금법 바꿔 외화채 발행 '물꼬' [시그널]

서울경제 김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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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환율 안정화 방안 검토
외화조달 다변화 차원서 추진
달러 수요 분산 환율안정 기대
4자 협의체서 논의 속도낼 듯
이 기사는 2025년 12월 8일 17:21 자본시장 나침반 '시그널(Signal)' 에 표출됐습니다.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어서면서 외환 당국이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복지부도 환율 안정화 방안을 내놓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8일 관계부처 및 국회에 따르면 복지부 연금재정과는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 필요성과 타당성 등에 대한 검토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환율 안정화를 위해 외화 조달의 다변화가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기금 재원을 연금보험료, 기금 운용 수익금, 적립금, 공단의 수익 지출 결산상의 잉여금으로 제한하고 있다. 부채 발행을 통해 기금 재원을 확보할 수 없는 구조로, 외화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외화채로 일부 해외투자 자금을 직접 조달하면 현물환 시장에서 원화를 팔아 달러를 확보해야 하는 규모가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규 해외투자 자금의 달러 매입 수요를 분산시켜 외환시장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복지부는 검토를 마치고 나면 ‘환율 대응을 위한 4자 협의체’에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정부 입법 형태로 법 개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기획재정부·복지부·산업통상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금융감독원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꾸려 외환 수급의 안정화를 위한 정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최근 “연기금의 규모가 굉장히 커졌는데 이는 연기금이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연기금도 환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라며 “상호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황 변화에 따라 연금의 운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한 번쯤 고민할 시기라는 데 공감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환율 안정화 관점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기관인 만큼 의사 결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금 자산 절반 이상 해외에 투자
외화채 직접발행땐 환율안정 도움
확장 재정 등에 원화 약세 불가피
해외 자회사 배당금 비과세 확대
기업 달러 국내 유입 유인책 필요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을 위한 법 개정 검토에 나선 것은 관계 부처가 환율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좀처럼 1470원 선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 가치 약세가 지속되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복지부도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9원 내린 1466.9원에 마감했다. 다른 주요국 통화와 비교하면 원화는 여전히 약세 국면이다. 실제로 지난 한 주 동안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4일 하루를 제외하고 연일 하락했다. 같은 기간 엔·달러 환율은 전주 대비 0.1% 떨어졌고 중국 위안화도 0.01% 하락하는 등 달러 대비 강세를 보였다. 반면 원·달러 환율은 0.1% 올랐다.


시장에서는 수출 업체들의 달러 매도(네고) 물량이 충분히 나오지 않는 가운데 국내 투자자들의 꾸준한 환전 수요가 이어지면서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이 원·달러 환율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외화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되면 외환시장 안정화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화채란 외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해외에서 달러·유로 등 외화로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기금운용 공시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운용 자산 1361조 2000억 원 중 해외 주식(508조 2000억 원)과 해외 채권(96조 6000억 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44.4%에 달한다. 여기에 대체투자(해외투자분)까지 고려하면 전체 자산 중 절반 이상이 해외에 투자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수백조 원의 해외투자를 하는 만큼 외화채를 직접 발행해 달러 매입 수요를 줄이고 외환시장의 안정화를 도모하자는 게 법 개정 필요성의 주요 논리다. 또 실제 발행과 무관하게 법 개정을 통해 외화채를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한층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익률 저하와 금융 리스크 확대다. 외화채는 부채 성격으로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데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줄어들 여지가 크다. 또 글로벌 금융 여건이 악화되거나 금리가 상승할 경우 국민연금의 상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국민의 노후 소득을 책임지는 국민연금의 불확실성 리스크가 더욱 확대되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에도 사실상 최후의 보루인 국민연금 카드까지 꺼내든 것은 환율을 낮추고 거시경제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원화 가치의 약세는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환율이 1% 오를 때 소비자물가는 0.03~0.04%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2%대 중반을 기록 중인 생활 물가에 환율에 따른 상승 압력이 더해지면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가계, 특히 저소득층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한 후 수출하는 한국의 산업구조를 고려하면 지속적인 원화 약세 현상은 제조 원가 상승으로 직결되며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만 국민연금 동원에 대한 우려는 정부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확장재정, 대미 투자 등으로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경제 환경에서 국민연금을 활용한다고 해서 원화 가치를 높일 수 있겠냐는 비판이다. 외환시장에서는 해외 자회사 배당금의 비과세 범위를 95%에서 100%로 확대해 기업의 달러를 국내로 유입될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확장재정 기조로 원화 가치 약세가 심화할 수밖에 없는데 국민연금을 외환 방어에 동원하는 것은 향후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외화채 발행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 할 수 있는 다른 환율 안정화 정책도 검토되고 있다. 국민연금과 한국은행은 지난달부터 외환스와프 연장 계약 논의를 시작했다. 해당 계약은 올해 말까지 만기로 총스와프 규모는 650억 달러다. 외환스와프는 국민연금의 현물환 매입 수요를 흡수하고 외환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스와프 거래 기간 중 외환보유액이 거래 금액만큼 줄어들지만 만기 시 자금이 전액 환원되기 때문에 외환보유액 감소는 일시에 그친다.

또 국민연금의 환헤지 비율을 높이는 방안도 시장에서는 거론되고 있다. 전략적·전술적 환헤지를 최대 15%까지 늘리는 방안이다. 이 경우 환율이 추가적으로 상승하게 되면 국민연금이 얻을 수 있는 환차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국민연금 측은 환헤지 비율을 높이는 등의 방안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알려졌다.


김병준 기자 econ_j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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