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 <29> 반려동물 동거 문제
Q : 57세 중년 남성 K다. 딸이 부산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뒤 집안 분위기가 무척 적막해졌다. 어느 날 아내가 "여보, 우리 개 한 마리 키울까?"라고 제안했고, 7세 믹스견 '복이'가 가족이 됐다. 아침 산책에도, 내가 퇴근하는 저녁 귀가할 때도 반겨주는 복이 덕분에 집에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그런데 직장 문제로 내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복이와 함께 이사할 집을 구해야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 예정’이라고 하니, 중개업소마다 난색을 표했다. 결국 집을 구할 때 반려동물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났다. 중개인으로부터 계약서를 받았는데, 다행스럽게 특약란에도 반려동물 금지 조항은 없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 만난 집주인도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고, 나 역사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복이와 함께 새집에 입주했다.
5개월 뒤 산책길에서, 옆 신축 아파트 단지에 사는 집주인과 마주쳤다. 집주인은 대뜸 “속인 거 아니냐"라며 화를 냈고, 계약 기간을 채우자마자 이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퇴거일이 되자, 집주인은 장판, 벽지, 냄새 제거 비용 등 명목으로 290만 원을 요구했다. 입주 당시 이미 9년 된 집이었고, 벽지도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지만 그때 상태를 입증할 증거 자료가 없었다. 실랑이 끝에 결국 보증금에서 250만 원이 빠져나갔다. 이제 또 다른 집을 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A : 반려동물 1,500만 가구 시대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중·장년층이 빠르게 늘고 있는 현실에서, K씨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이들 상당수는 오늘도 벽지에 남은 얼룩 하나에 신경이 곤두서고, 초인종 소리에도 쉽게 놀란다. ‘혹시 당장 집 빼라고 하지 않을까?’ ‘혹시 청구 비용이 과하면 어쩌지?’
먼저 K씨의 법적 상황부터 짚어보자. K씨가 체결한 임대차 계약서에는 '반려동물 금지' 특약이 없었다. 법적으로만 보면, 반려동물 사육을 제한할 근거가 빈약하다. 그런데도 K씨는 왜 250만 원이나 손해를 봤을까?
문제는 법적 권리와 실제 주거 안정 사이의 간극이다. K씨처럼 반려동물 사실을 밝히지 않고 계약을 체결하면, 특약이 없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임대인과의 신뢰가 무너진다. 신뢰가 깨진 임대인은 퇴거 과정에서 과도한 ‘원상 복구비’를 요구하거나, 계약 연장을 거절하는 등 합법적 범위 내에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K씨가 겪은 상황이 바로 이것이다. 법적으로 이겼을지 몰라도, 평온한 주거는 보장받지 못한 셈이다.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법적 권리로는 주거 안정 힘들어
세입자, 투명협상·증거확보 필요
'숨길 일' 아닌 '지킬 권리'로 인식
세입자, 투명협상·증거확보 필요
'숨길 일' 아닌 '지킬 권리'로 인식
Q : 57세 중년 남성 K다. 딸이 부산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뒤 집안 분위기가 무척 적막해졌다. 어느 날 아내가 "여보, 우리 개 한 마리 키울까?"라고 제안했고, 7세 믹스견 '복이'가 가족이 됐다. 아침 산책에도, 내가 퇴근하는 저녁 귀가할 때도 반겨주는 복이 덕분에 집에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그런데 직장 문제로 내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복이와 함께 이사할 집을 구해야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 예정’이라고 하니, 중개업소마다 난색을 표했다. 결국 집을 구할 때 반려동물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났다. 중개인으로부터 계약서를 받았는데, 다행스럽게 특약란에도 반려동물 금지 조항은 없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 만난 집주인도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고, 나 역사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복이와 함께 새집에 입주했다.
5개월 뒤 산책길에서, 옆 신축 아파트 단지에 사는 집주인과 마주쳤다. 집주인은 대뜸 “속인 거 아니냐"라며 화를 냈고, 계약 기간을 채우자마자 이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퇴거일이 되자, 집주인은 장판, 벽지, 냄새 제거 비용 등 명목으로 290만 원을 요구했다. 입주 당시 이미 9년 된 집이었고, 벽지도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지만 그때 상태를 입증할 증거 자료가 없었다. 실랑이 끝에 결국 보증금에서 250만 원이 빠져나갔다. 이제 또 다른 집을 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A : 반려동물 1,500만 가구 시대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중·장년층이 빠르게 늘고 있는 현실에서, K씨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이들 상당수는 오늘도 벽지에 남은 얼룩 하나에 신경이 곤두서고, 초인종 소리에도 쉽게 놀란다. ‘혹시 당장 집 빼라고 하지 않을까?’ ‘혹시 청구 비용이 과하면 어쩌지?’
먼저 K씨의 법적 상황부터 짚어보자. K씨가 체결한 임대차 계약서에는 '반려동물 금지' 특약이 없었다. 법적으로만 보면, 반려동물 사육을 제한할 근거가 빈약하다. 그런데도 K씨는 왜 250만 원이나 손해를 봤을까?
문제는 법적 권리와 실제 주거 안정 사이의 간극이다. K씨처럼 반려동물 사실을 밝히지 않고 계약을 체결하면, 특약이 없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임대인과의 신뢰가 무너진다. 신뢰가 깨진 임대인은 퇴거 과정에서 과도한 ‘원상 복구비’를 요구하거나, 계약 연장을 거절하는 등 합법적 범위 내에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K씨가 겪은 상황이 바로 이것이다. 법적으로 이겼을지 몰라도, 평온한 주거는 보장받지 못한 셈이다.
따라서 반려동물 문제는 숨기거나 법적 권리만 주장해서는 해결되기 어렵다. 실무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세 가지 전략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먼저, 투명하게 알리고 협상하는 것이다. 집주인들이 우려하는 지점은 '냄새'와 '원상복구 비용'이다. 이를 해결할 구체적 계획을 알려주면 협상이 쉬워진다. "깨끗하게 사용하겠다"라는 막연한 약속 대신, "소형견 1마리로 제한하겠다” “퇴거 시 전문 청소업체가 청소하여 원상회복한다” “중대한 손상 발생 시에는 별도 협의한다”는 방식으로 특약을 제안하는 편이 설득력이 크다. 이렇게 하면 임대인의 막연한 불안을 덜어주고, 분쟁 가능성 역시 낮아진다.
둘째, 입주 첫날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반려동물이 긁거나 훼손하기 쉬운 도배지, 장판, 문틀, 몰딩 등을 고화질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이 좋다. 기존 하자가 있다면 즉시 임대인에게 메시지로 사진을 전송해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 퇴거 시 "원래 있던 자국"임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셋째, 원상복구 분쟁이 발생하면 ‘내구연한’을 주장하는 방법도 있다. 도배와 장판의 내구연한은 일반적으로 6~10년으로 본다. "반려동물로 인한 손상은 인정하되, 벽지는 이미 수명이 다했으니, 새 벽지 구입비는 제외하고 시공비의 50%만 부담하겠다"는 구체적 타협안도 가능하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진정한 삶은 만남 속에 있다"고 말했다. 임대인과 임차인도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양보해야 하는 관계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각자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임대인이라면 당연히 소중한 재산을 지키고 싶고, 임차인에게는 가족과 함께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두 마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명확한 약속'이 필요하다.
집은 당신과 반려동물 모두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 공간이 불안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명확한 약속, 문서화된 합의, 입주 시점의 증거 확보. 이 세 가지 전략이 갖춰진다면, 벽지의 작은 얼룩에 가슴 졸이거나 초인종 소리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중년의 삶은 숨어야 할 일이 아니라, 당당히 지켜낼 수 있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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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