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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완벽한 우주'를 발견하는 5가지 방법 [김설화의 미술관 가는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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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설화 큐레이터]
김설화 큐레이터는 감각을 지식보다, 질문을 정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미술관 가는 길을 찾다’는 그가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관람객이 미술관을 더 쉽게 찾는 길을 안내하는 실용 가이드다. 미술 작품 앞에서 멈춰 선 순간부터 시작되는 감상법을 제시한다.

김설화 큐레이터는 감각을 지식보다, 질문을 정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미술관 가는 길을 찾다’는 그가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관람객이 미술관을 더 쉽게 찾는 길을 안내하는 실용 가이드다. 미술 작품 앞에서 멈춰 선 순간부터 시작되는 감상법을 제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벽을 가득 채운 대형 작품들로 향합니다.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우리는 발길을 멈추고, 감탄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 압도적인 풍경의 틈새, 시선이 닿지 않던 벽면의 여백에 종종 숨죽인 듯 자리한 작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캔버스, 엽서 크기의 드로잉, 혹은 무심하게 뜯어낸 듯한 습작들. 대작들의 아우라에 가려 대개 시선이 한 번 스쳐 지나가고 맙니다.

그런데 고개를 숙이고 그 앞에 서면, 무심히 지나칠 때는 보이지 않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작은 작품 앞에서의 시선

첫째, 작은 작품 앞에서는 먼저 다가가고, 허리를 숙이는 동작이 필요합니다.

대형 작품 앞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섭니다. 거대한 화면 전체를 눈에 담으려면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까이 다가가 디테일을 살펴볼 수도 있지만, 그 전에 먼저 전체 구도와 색채, 압도적인 스케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반면 작은 작품은 관람자의 능동적인 개입 없이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멀리서는 그 실체가 모호하기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허리를 반쯤 기울여 그 앞에 서야 합니다. 이 거리는 우리가 책상 위의 메모를 들여다보거나 편지를 읽을 때의 자세와 비슷합니다. 작업 결과를 감상한다는 마음보다는 작업 과정에 남겨진 생각의 조각들을 빌려 보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작은 화면 속 긴장감


둘째, 모든 요소를 확인해야 합니다. 작은 화면에서는 모든 요소가 결정적이기 때문입니다.

큰 화면에서는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는 작은 점 하나 선 하나도, 손바닥만 한 화면에서는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는 주인공이 됩니다. 같은 크기의 붓질이라도 큰 화면에서는 전체 구도의 일부로 읽히지만, 작은 화면에서는 화면 전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조금만 위치가 달라져도 균형이 무너지고, 색을 한 톤만 더 올려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는 무엇을 넣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빼낼 것인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제한된 면적 안에서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는 과정에서, 작가의 선택 하나하나가 더 예리하게 드러납니다.


그 선택을 읽어내는 쾌감이 있습니다. 작은 사각형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단순해 보이던 것이 점점 필연적으로 버티며 팽팽한 균형을 만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작은 화면 속 큰 단서들

셋째, 과정의 단서들을 읽어야 합니다.

작은 작품은 하나의 완결된 작업이면서, 동시에 전시 전체를 해석하게 만드는 '주석'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큰 작업에서 반복해 보이던 형태나 색이, 작은 드로잉 안에서는 훨씬 단순한 구조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대작 옆에 놓인 스케치나 습작을 보면, 같은 모티브가 어떻게 변화하고 다듬어졌는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과감했던 형태가 점점 절제되기도 하고, 조심스럽던 시도가 대작에서는 확장되기도 합니다.

작은 화면과 큰 화면을 번갈아 보면서, 같은 작가의 작업 안에서도 서로 다른 결을 읽어내게 됩니다.

특히 연필이나 펜으로 그린 드로잉에서는 작가의 손길이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집니다. 종이 위의 선 하나하나가 작가의 호흡을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압력의 변화, 선의 속도,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은 관람자에게 작은 리듬처럼 다가옵니다.

대작 앞에서는 압도적인 완성도에 감탄하게 된다면, 작은 종이 작업 앞에서는 작가의 손끝과 내 시선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는 친밀함이 생깁니다.

작지만 완벽한 우주

넷째, 한번 더 뒤돌아보세요.

일부러 작은 작품을 의식해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전시장을 나서기 전, 화려한 대작들 사이에서 조용히 자리하던 작은 작품들을 한 번 더 뒤돌아보세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그 벽면의 여백에서, 크기로는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조금 다른 곳에 시선을 두어 보세요. 가장 작은 화면이 오히려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는 주저함, 결심, 망설임, 그리고 작가가 끝내 남겨둔 미세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작지만 완벽한 당신만의 우주

다섯 째, 당신만의 우주를 발견하세요.

조용히 놓여 있는 작은 화면 속에서 때로는 더 넓은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건 작가가 만든 세계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발견한 순간, 당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당신만의 완벽한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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