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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의 이코노믹스] 미 대법원의 상호관세 판결 대비하는 전략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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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세 협상 타결 후 남은 숙제는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허브 원장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허브 원장

미래가 현실이 됐을 때, 그 미래에 대한 예측은 초라해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되고 백악관 재입성을 준비하던 지난해 이맘때, 세상은 ‘관세맨’ 트럼프의 귀환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예측으로 분분했다. 선거 유세 때 공언한 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한 10% 보편관세, 중국에 대한 60% 징벌적 관세가 실제로 실현될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높은 관세로 해소하겠다는 발상의 놀라운 단순함, 상대 국가의 무역 보복 가능성, 고관세가 가져올 물가 상승 등. 이런저런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를 근거로 트럼프의 정치적 신분이 대선 후보에서 대통령으로 변화하는 순간, 그의 관세 공약(公約)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2기 임기의 첫해의 끝자락에서 돌이켜 보면, 그 예측들은 순진하거나 단순했다. 상대는 상식과 원칙, 합리성의 사전적 정의를 새로 쓰는 트럼프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내건 ‘관세 4종 세트’에

사라진 국제 공조 속 각자도생만


거액 대미 투자로 관세 인하 타결

통상과 안보 패키지 딜 가능한 덕

반도체·의약품 관세 미래 진행형


한·미 FTA 불균형 해소는 과제

물가 상승, 무역 전쟁, 경기 침체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트럼프는 자신의 관세 4종 세트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겼다. 중국과 멕시코 등을 겨냥한 펜타닐 관세, 철강·자동차·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 세계를 상대로 미국 시장 입장료를 인상하는 보편관세, 국가별 수입 관세를 차등하는 상호관세까지 현란한 ‘관세 4종 세트’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표 상품이 됐다. 고관세가 물가 상승을 유발해 미국 경제 침체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자제할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심각한 물가 상승은 없었고, 전면적인 무역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경기 침체 우려는 현실화하지 않았다.

세상은 트럼프가 ‘해방일’이라고 명명한 지난 4월 2일, 국가별 차등적인 ‘상호관세’를 부과하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같은 품목의 수입 관세를 국가별로 차별하는 ‘상호관세’를, 전 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전격적으로 도입하는 무모함에 세상은 경악했다. 거의 사용된 적이 없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트럼프가 매긴 국가별 상호관세는, 상대국의 무역보복으로 이어져 세계 경제의 침체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을 비웃듯, 무역 전쟁이 아닌 무역 협상으로 이어졌다.


양자 협상 따른 관리 무역 시대 개막

별안간 수직 상승한 미국의 고관세를 인하하려는 세계 각국의 시도는, 트럼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정상 외교술을 경쟁적으로 탄생시켰다. 갑자기 높아진 미국 시장의 담을 넘기 위해 국가 간의 국제 공조는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생존 전략에 골몰했다. 미국은 그들 간의 경쟁을 유도하면서 유리한 협상 국면을 조성했다.

트럼프 2기 임기 첫해가 끝나기도 전에 세계 통상 지도는 천지개벽했다. 같은 품목의 수입 관세를 국적을 가려서 차별하지 않던 미국은 사라지고, 국가별 차등 관세를 부과하는 새로운 미국으로 바뀌었다. 높아진 미국 관세를 낮추기 위해 미국산 구매를 확대하고, 미국에 거액의 투자 약속을 해야 했다.

지금까지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 협상을 타결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 영국, 유럽연합(EU) 등 미국의 동맹국과 미국을 주요 수출 시장으로 삼는 아시아 제조업 국가다. 중국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맞대응하면서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고, 브라질 등 글로벌 사우스는 미국과의 협상에 미온적이지만,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다자규범 중심의 자유무역은 폐기되고, 미국과의 양자 협상 결과에 따른 관리 무역의 시대가 열렸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시간에 쫓기지 않고’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 확보’를 협상 목표로 정한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가 설정한 8월 1일 시한을 코앞에 두고 관세 협상을 타결지었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선언한 상호관세를 인하하고 일부 품목별 관세를 인하하는 대신, 거액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트럼프식 거래 방식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대미 투자 패키지의 성격과 운용 방식을 둘러싼 한·미 간의 첨예한 이해충돌은 10월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극적으로 매듭지어졌다.

달라지는 한·미 동맹 성격과 내용

과도한 현금 투자가 몰고 올 외환시장의 불안성과 외환위기 가능성을 이유로 한국 정부는 미국에 통화스와프와 현금 비중 최소화(5%)를 요구했고, 미국은 인색했다. 미국의 완강한 거부에 교착 상태에 빠졌던 협상은 ‘향후 10년간 매년 200억 달러 투자’ 방식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통화스와프도 현금 5%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지만, 투자 기간을 10년으로 확대하고 ‘상업적 합리성’을 투자처 선정의 중요 고려요인으로 확보했다. ‘어음 주고 현찰 받은’ 고육지책이다. 양국의 합의 사항을 담은 팩트 시트, 대미투자 양해각서(MOU)도 각각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7월 말 이재명 정부와 트럼프 대통령 간의 관세 협상 타결 선언 후, 3개월간 팽팽하게 맞서던 투자 협상이 타결된 이면에는 통상과 안보를 연결하는 패키지 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미 경주정상회담에서의 합의 내용은 관세와 대미 투자, 외환시장 안정, 한반도와 인도 태평양, 대만해협, 조선·원자력 협력 등 광범위한 경제·안보 의제를 하나의 문서에 통합해서 담고 있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중국-대만 양안 관계의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를 명문화한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관세와 투자를 연계하는 무역 합의, 핵잠수함 추진, 한국의 방위비 인상, 전시작전권 전환 등을 담고 있는 ‘한·미 동맹의 현대화’는 북한에 대응하는 군사 동맹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축으로 한 경제 동맹이었던 한·미 동맹의 성격과 내용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고위당국자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아닌 동맹국 중 한국이 가장 모범적 국가”라고 평가한 것은 한국의 국방비 증가 규모뿐만 아니라 주한 미군의 성격이 한반도를 넘어선 중국 견제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인식은 백악관이 지난 5일 공개한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최상위 지침인 국가안보전략(NSS)보고서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 과정과 협상 결과는 이재명 정부가 미·중 패권 경쟁 시대에 한·미 동맹을 외교 안보와 경제 통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반으로 삼고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저항하지 않고 협상했고, 대규모 대미 장기 투자를 약속했다. 한국은 일본, EU와 함께 미국 제조업 부흥의 핵심 파트너가 됐다.

역사 속 사라진 한·미 FTA 프리미엄

문제는 지금부터다. 핵심 파트너의 천문학적인 대미 투자가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이끌려면, 트럼프 대통령 임기를 넘어서는 미국의 지속적인 공급망 개편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 반 이민 정책을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풀뿌리 지지 세력의 반발을 극복해야 가능한 인력 확보 문제,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희토류의 안정적 확보와 중국 의존도 해소 등 고난도의 정책 과제가 남아있다. 이번 합의에도 한·미 통상 현안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다. 232조에 근거한 품목관세는 지속하고, 반도체·의약품 등 트럼프 대통령이 수시로 꺼내는 품목에 대한 관세 문제는 여전히 미래진행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는 지난 4월 2일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근거로 전 세계적으로 일방적으로 부과한 것이다. 한국에 부과한 25%도 이에 포함돼 있다. 이 조치는 한·미 양국이 장기간 협상과 국내 비준 절차를 거쳐 적법하게 발효한, ‘상호 무관세’를 약속했던 한·미 FTA를 철저히 무시했다. 한국은 경쟁국인 일본과 독일보다는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아냈지만, 2012년 협정 발효 이후 지난 13년간 누려왔던 한·미 FTA ‘무관세’ 프리미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초강대국이자 동맹인 미국이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협상에서, 경제 동맹의 상징이던 한·미 FTA는 무시되고, 미국이 새로 설정한 높은 관세를 내리기 위해 한국은 대미 투자를 담보로 설정해야 하는 협상에 내몰렸다. 관세 협상 결과 미국은 25% 상호관세를 15%로 인하했지만,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무관세에서 15%로 대미 관세가 인상됐다. 미국은 한국에 일방적으로 관세를 인상했지만, 한국은 한·미 FTA에서 약속한 미국산 무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미 FTA가 폐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비대칭적 상황을 어떻게 법적으로 처리하여야 하는지 과제로 남는다.

트럼프 정부 상호관세 플랜B 대응해야

현재 미국 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적법성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1·2심과 동일하게 ‘불법/무효’로 최종 판결될 경우, 한국 정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거액의 투자 약속과 관세 인하를 교환하는 협상 구조 속에서 탄생한 것이 한국의 대미 투자 3500억 달러 합의 아닌가. 그 교환의 전제가 허물어진 상황이라면, 협정의 정당성도 훼손된다. 그럴 경우 그 협정은 무효화되나. 재협상을 해야 하는 것인가.

새로운 국면에서 각자도생으로 트럼프 관세 폭탄 제거에 나섰던 일본, EU, 한국은 협력 전선을 구축할 수 있을까.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가 최종 무효 판정으로 결정되면 지금까지 미국이 징수한 관세 수입금을 해당 국가에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인 상식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를 기정사실로 하려는 플랜 B를 가동할 태세다. 트럼프 뉴노멀 시대에 기존의 합리성을 뛰어넘는 담대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통상전략혁신허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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