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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담는 언어[내가 만난 명문장/윤강은]

동아일보 윤강은 작가·소설 ‘저편에서 이리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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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원히 우리를 스쳐 간다.”

―이장욱 ‘천국보다 낯선’ 중


윤강은 작가·소설 ‘저편에서 이리가’ 저자

윤강은 작가·소설 ‘저편에서 이리가’ 저자

어릴 적에 나는 나와 세상이 분리되는 감각에 빠져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건 확실히 ‘분리’라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가만히 앉아 느리게 호흡하며 머리를 비워내면 된다.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흐릿해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와 나를 둘러싼 외부의 경계를 또렷이 느낄 수 있다. 나는 멈추어 있고 세상은 움직이는 듯하다. 나와는 무관하게 흐르며 나를 스쳐 가는 세상. 그때 스쳐 간 세상은 두 번 다시 내게 오지 않는다. 그 순간의 나 또한 마찬가지다. 세상뿐만 아니라 나 자신마저 낯설어진다. 잠시 까마득하게 멀어졌던 내 몸, 이름, 시간과 공간, 친구들과 가족들까지 하나둘 가까이 돌아오고, 나는 복귀한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내가 경험했던 기묘한 분리를 다시 불러일으킨 텍스트가 ‘천국보다 낯선’이었다. 내 표현력으로는 도통 담아낼 수 없었던 감각을 생생하게 상기할 수 있었다. 내 옆의 익숙한 사람이 불현듯 모르는 사람인 것만 같은 순간, 내가 하는 생각과 내가 느끼는 감정, 더 나아가 내가 사는 삶까지도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비롯한 그 무엇도 다시 마주칠 수 없다. 우리는 영원히 우리를 스쳐 간다. 이 소설은 그러한 낯섦을 일깨운다. 나는 그 감각에 오래 머물러 있고 싶을 때 이 소설을 읽는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소설이 매혹적인 이유 중 하나는 그것에 있다. 언어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것을 조금이라도 담아내려는 안간힘. 무척이나 어렵고 난감한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짜릿한 일이다. 일상에 제동이 걸리는 순간을 아낀다. 어쩌면 그 제동만을 기다리며 찬찬히 일상이라는 길 위를 걸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윤강은 작가·소설 ‘저편에서 이리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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