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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51% 룰’에 갇힌 원화 스테이블코인… 혁신의 골든타임 놓칠라

디지털데일리 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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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조윤정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2022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테라·루나 사태’의 트라우마를 딛고 드디어 우리 금융 시장에도 디지털 자산의 혈관을 뚫겠다는 시도다.

그런데 그 혈관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를 두고 당정이 내놓은 해법은 다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바로 정부가 최근 내놓은 ‘은행 지분 51% 이상 컨소시엄’ 모델이다.

정부의 고민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의 생명은 신뢰와 안정성이다. 준비금 관리와 내부통제 시스템이 검증된 은행이 주도권을 쥐어야 탈이 없다는 ‘안전제일주의’가 깔려 있다.

하지만 시장 안팎에서는 이 설계도가 자칫 ‘모래성’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안정성을 좇다가 현실성이라는 지반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우선 현행법과의 충돌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은행법 제37조의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은행은 비금융사 지분을 15% 이상 가질 수 없다. 정부의 ‘51% 룰’을 맞추려면 최소 4개 이상의 은행이 손을 잡고, 나머지 지분을 핀테크 기업들이 나눠 갖는 기형적인 구조가 불가피하다.

법적 예외를 두면서까지 은행 중심 구조를 고집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뼈아픈 건 글로벌 트렌드와의 ‘속도 격차’다.

한국이 지분율 계산기를 두드리며 소모적인 구조 논쟁에 매몰된 사이, 글로벌 주요국은 이미 제도 정비를 마치고 시장 선점을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이미 월가 대형 은행들과 손잡고 스테이블코인, 커스터디 등 실질적인 파일럿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가까운 일본 역시 일찌감치 법적 기틀을 마련했다.


최근 핀테크 기업인 JPYC가 당국 인가를 받는 등 제도가 시장에 안착하며 본격적인 서비스 경쟁 단계로 접어들었다.

보수적인 유럽 은행들조차 달러 패권에 맞서기 위해 유로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합작법인을 꾸리고 내년 하반기 출시라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확정했다. 이들에게 스테이블코인은 국채 시장을 받치고 실물 자산과 연결하는 당장의 새로운 '금융 인프라'다.

반면 우리는 스테이블코인을 은행 울타리 안에 가두려는 모양새다.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경쟁력은 활용성이다. 아무리 안전한 코인이라도 쓸 곳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빅테크·핀테크 기업들이 가진 수천만명의 사용자 기반과 결제 네트워크가 배제된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발행되더라도 시장에서 외면받을 공산이 크다.

혁신적인 핀테크 기업들이 은행 컨소시엄의 들러리로 전락한다면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테더(USDT) 같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국경을 넘어 유동성을 흡수하고 있다. 자칫하다간 디지털 금융의 주도권을 외산 플랫폼에 내주는 디지털 종속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물론 ‘제2의 테라 사태’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는 필수다. 하지만 규제는 시장의 흐름을 막는 댐이 아니라, 물길을 안전하게 터주는 수로가 되어야 한다. 은행의 안정성과 핀테크의 혁신성이 공존할 수 있는 개방형 경쟁 구조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건 100% 무결점의 통제가 아니라,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속도와 균형 감각이다. 51%라는 숫자에 매몰돼 정작 중요한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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