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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한때 광풍 메타버스

조선일보 이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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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일러스트=박상훈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등장한 ‘메타버스’는 ’현실을 초월(Meta)한 디지털 우주(Universe)‘를 뜻한다. 고글만 쓰면 누구나 영웅이 되고 억만장자가 될 수 있는 유토피아다. 이 공상과학(SF)적 상상이 주목받은 건 코로나 때문이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자 전 세계에서 메타버스에 돈이 쏟아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사 블리자드를 80조 원에 인수했고, 디즈니는 ‘메타버스 사업부’를 신설하며 테마파크를 가상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디지털 콜럼버스’들의 대항해 시대가 열린 듯했다.

▶메타버스 열기는 광풍과도 같았다. 수익 모델이 없는데도 메타버스 사업을 한다는 이유 만으로 몇조원씩 투자가 몰리고, 주가가 몇십 배로 치솟았다. 가상의 부동산을 돈 주며 사고 팔고, 심지어 달과 화성의 토지를 매매하는 메타버스까지 생기는 지경이었다. 마크 저커버그가 모든 사업을 메타버스 기반으로 재편하겠다며 회사 간판을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바꾼 것은 광풍의 정점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 메타가 받아 든 성적표는 참혹하다. 그 기간 영업 손실만 700억 달러(약 103조 원)에 달한다. 대중들은”재미 있으면 게임, 재미 없으면 메타버스”란 조롱을 쏟아냈다. 무겁고 어지러운 헤드셋과 고글, 조잡한 아바타의 한계였다. 결국 메타는 내년 메타버스 사업 관련 예산을 30% 삭감하며 구조조정에 나섰다.

▶‘메타버스 실패기’를 쓴다면 첫 줄은 ‘기대가 기술을 앞서간 탓’이다. 정의(定義)는 모호했고 콘텐츠는 빈약했다. 초기엔 NFT(대체 불가능토큰)나 가상 부동산으로 돈을 끌었지만, 정작 “거기서 뭘 하는데?”란 질문엔 답을 못했다. 그 사이 세상의 관심은 인간을 능가할 듯한 챗GPT와 AI로 이동해버렸다. 아직 메타버스에 사망 선고가 내려진 건 아니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의 폐허 속에서 아마존과 구글이 살아남아 세상을 바꿨듯, 놀라운 기술이 싹트고 있을 수 있다. 메타가 사업을 축소하면서도 증강현실(AR) 스마트 안경은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이 실현되는 데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설계도에서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까지 400여년이 걸렸다. 인공 지능도 수십년간 실현 불가능으로 조롱받았지만 지금 세상을 삼키고 있다. 당장 어렵다고 포기하는 게 늘 정답은 아니란 얘기다. 메타버스는 일단 닻을 내리고 멈춰 섰다. 기술이 인간의 눈높이에 아직 부족해서다. 겨울에 씨앗을 뿌릴 수는 없다는 시장의 냉정한 경고일 것이다.

[이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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