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월 하순 한국 주식시장에서 유래가 없던 코스피 4000선을 넘어섰다. 지난 6월 20일, 3년 6개월 만에 3000선을 회복한 지 불과 4개월 만이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이끄는 기업 실적 개선에 더해 미중·한미 무역 협상 타결 예상, 미국 금리 인하 기대 등이 맞물려 지수를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숫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번 상승세는 꽤나 정직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 한해 한국 주식시장은 “실적이 보이는 곳으로 돈이 몰렸고, 그 돈이 끝내 대형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정리된다.
먼저, 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자타공인 올해 증시 상승세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폭발하면서 메모리, 특히 HBM 수요가 급증했고, 그 수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가시성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시장은 “이번 사이클은 분기 단위로 확인되는 실적 사이클”이라고 받아들이며 주가에 프리미엄을 얹었다.
두 번째는 정책 모멘텀이다. ‘밸류업’ 정책이 제도화되며 저PBR 대형주에 재평가가 붙었다. 지배구조 개선과 주환원 강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한국 시장의 구조적 할인 요인을 줄일 거라는 논리로 이어졌고, 외국인 자금이 돌아올 명분이 생겼다.
마지막은 수급의 질적 변화다. 2025년 외국인 매수는 ‘코스피 핵심 산업군’에 집중됐다. 과거처럼 시장 전체를 넓게 사는 방식이 아니라, AI·수주·금융처럼 실적이 확인되는 영역을 강하게 사들이는 형태였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서 2025년 코스피는 경기와 유동성에 흔들리는 시장에서 한 단계 올라서, AI 인프라와 국가 전략산업이 주도하는 구조적 성장장으로 성격이 바뀐 모습이다.
올해 시장을 끌어간 섹터는 명확했다. 연초 이후 11월 20일까지 코스피 상승률 Top50의 평균 수익률이 200%를 훌쩍 넘길 만큼 상승이 특정 군집에 집중됐는데, 그 군집의 중심축은 AI 인프라였다. 먼저 반도체는 메모리 양대 축의 강세로 시작했지만, 2025년의 확산은 밸류체인 전체로 번졌다. AI 서버가 고사양화되면서 HBM뿐 아니라 패키징과 기판, PCB 수요가 폭증했고, 이에 연결된 부품사들의 실적 기대가 현실로 옮겨가자 주가가 가파르게 달렸다.
이 흐름 위에서 두 번째로 커진 축이 전력 기기다. AI는 전기를 먹고 큰다는 사실이 시장을 재정의했다. 데이터센터 증설이 글로벌 전력 부족을 불러오면서 변압기와 배전, 송전망 투자가 급증했다.
증권가에서는 “전력기기 업체들은 수주 잔고가 실적으로 직결되는 산업 특성을 바탕으로 ‘AI 인프라의 동반자’로 재평가 받아 전력 섹터의 연장선에서 원전주도 구조적 주도주로 자리잡았다”라고 설명한다.
전력 수요를 장기적으로 감당할 기저 전원에 대한 선호가 커지면서 대형 원전과 SMR 기대가 동시에 커졌고, 원전 EPC·기자재 기업들은 ‘정책+수주’의 결합으로 실적 가시성이 높아진 모습이다. 여기에 조선, 방산, 기계 같은 수주 산업이 2025년의 또 다른 주역으로 올라섰다. LNG 중심의 고부가 선종 수주와 선가 상승으로 조선은 구조적 실적 개선 구간에 들어섰고, 방산은 유럽·중동 수출이 본격화되면서 ‘테마가 아니라 수출 산업’으로 분류가 바뀌었다. 2025년 섹터 로테이션을 한 줄로 줄이면 ‘반도체 AI 파도 위에 전력·원전이라는 두 번째 파도가 올라타고, 그 위로 조선·방산이라는 수주 산업이 확장한 해’였다.
코스피 상승률 Top20이 보여준 ‘올해의 승자’
상승률 상위 종목은 시장의 결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연초 대비 200% 넘게 오른 종목들이 즐비한데, 그 중심엔 AI-전력-수주-정책 리레이팅 네 축이 있다. 대표적으로 SK하이닉스가 200%가 넘는 상승률로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얼굴이 됐고, 이수페타시스·대덕전자·코리아 써키트 같은 기판·PCB 기업들이 200~400%대 상승으로 뒤따랐다. AI 서버와 HBM 확산이 밸류체인의 ‘옆자리’까지 실적 기대를 밀어 올린 결과다. 전력기기 분야에서 효성중공업은 400%를 웃도는 상승률로 상위권에 자리했고, 이는 전력기기가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으로 읽히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원전 섹터를 대표하는 두산에너빌리티도 300% 넘는 상승으로 정책과 수주 모멘텀이 결합된 장세를 반영했다. 조선·방산·기계 수주 산업 역시 Top20에 다수 포진했다.
한화오션, HJ중공업, HD현대마린엔진 같은 조선·해양 관련 종목은 수주 잔고와 선가 상승이 주가로 전이된 전형적인 실적 장세였고, 현대로템과 엠앤씨솔루션 같은 방산 관련주도 수출 모멘텀을 등에 업고 급등했다.
흥미로운 점은 K-소비재의 부활이다. 에이피알과 제이준코스메틱 같은 뷰티·소비재 종목이 상위권에 오른 것은, 2025년 강세장이 산업 전반의 실적 회복과 수출 개선까지 ‘폭’을 넓혀갔음을 보여준다.
지난 10월 27일 4000 선을 돌파한 코스피 |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코스닥, 개별 종목은 강했다
코스닥 지수만 보면 2025년은 분명히 상대적 약세의 해였다. 그러나 종목 단위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바뀐다. 코스닥 상승률 Top 20에는 수백퍼센트, 심지어 천퍼센트 넘는 상승률이 등장한다. 씨어스테크놀로지, 로보티즈, 원익홀딩스 같은 종목들이 700~1100%대 상승률로 상단을 채웠고, 바이오·신약 플랫폼 기업들이 상위권을 광범위하게 점유했다. 디앤디파마텍, 올릭스, 큐리언트, 에이비엘바이오, 펩트론 등은 임상 진전이나 기술 가치 재평가가 맞물리며 ‘확률이 높아진 성장’에 시장이 프리미엄을 몰아준 사례다.동시에 로봇과 자동화, 그리고 AI 반도체 부품주가 Top20에 함께 섞였다. 클로봇, 로보티즈 같은 로봇주가 강했던 건 AI가 산업 응용 단계로 확장되며 자동화 수요가 현실로 연결되었기 때문이고, 티엘비·심텍·코세스 같은 IT부품·장비주는 코스피 반도체 대형주의 실적 파도를 코스닥에서 흡수한 결과다. 데이터로 보면 코스닥 상승 Top50 평균 수익률은 코스피 Top50 평균보다 훨씬 높다. 즉 코스닥은 ‘지수로는 소외됐지만, 맞는 종목을 고르면 알파가 훨씬 큰 시장’이었던 셈이다. 2025년 코스닥의 본질은 ‘약세장 속 선별적 폭등’이었다.
강세장은 늘 그림자를 만든다. 하락률 상위 종목들을 살펴보면 그늘의 방향도 분명하다. 코스피 하락 상위에는 2차전지 밸류체인과 관련 소재·테마 종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올해 2차전지 산업은 공급 과잉과 판가 하락, 전방 수요 둔화 논란이 겹치며 길게 조정받았고, 업황의 ‘바닥 확인’이 시장 기대보다 늦어지면서 주가의 프리미엄이 빠르게 소거됐다. 코스닥의 하락 상위는 더 극단적이다. 낙폭 -70~-90%대 종목이 다수라는 사실은 코스닥이 여전히 위험자산 선호와 유동성 환경에 가장 민감한 시장임을 보여준다. 성장주의 구조적 디레이팅 구간에서 신약 실패, 실적 부재, 재무 불안 같은 이벤트가 낙폭을 증폭시킨 것이다. 상승 Top50 평균 수익률이 코스닥에서 더 높았던 것처럼, 하락 Top50 평균 낙폭도 코스닥에서 훨씬 깊었다. 2025년 코스닥은 승자와 패자의 간극이 유난히 컸던 해였다.
그렇다면 왜 코스피는 역사적 강세장인데 코스닥은 뒤처졌을까?
가장 큰 이유는 지수 구조 자체의 차이가 꼽힌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코스피는 반도체, 전력·원전, 조선·방산, 금융처럼 2025년에 ‘실적이 당장 현실화된 업종’의 비중이 높은 반면 코스닥은 바이오와 2차전지 비중이 크다”라며 “시장이 실적 장세로 전환된 해에, 코스닥의 주력 업종은 여전히 ‘기대에서 검증으로 넘어가는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수급도 이를 강화했다. 2025년 외국인과 기관은 대형 반도체와 수주 산업, 밸류업 수혜 금융으로 매수를 집중했고, 코스닥은 개인 중심의 단기 모멘텀과 테마 매매가 주된 힘이었다. 대형주 중심 실적 장세가 커질수록 코스닥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 시장은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는 와중에도 성장주를 무조건 사주지 않았다. AI처럼 실적 전환이 이미 시작된 성장에는 프리미엄을 줬지만, 실적이 내년 이후에야 확인될 성장에는 냉정했다. 그래서 코스닥은 약했지만, 확률이 높아진 바이오·로봇·AI부품에는 돈이 몰리는 ‘좁고 깊은’ 강세가 나타났다.
반도체와 AI인프라 새해에도 유망
내년 전망에서 주요 증권사들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축은 비교적 단순하다. 반도체와 AI 인프라는 2026년에도 최상위 선호 섹터로 꼽힌다. 데이터센터 투자와 서버 교체 사이클이 이어지고, HBM 중심 메모리 업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AI 수요가 만들 전력 부족은 전력기기·그리드 투자 확대를 계속 자극할 것이고, 원전과 SMR은 장기 기저 전원 투자라는 흐름 속에서 수주 모멘텀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조선과 방산도 수주 잔고가 충분하고 수출 시장이 넓어지는 구조 덕분에 주도 업종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다만 하우스별로 조금씩 다른 지점은 ‘알파는 어디서 나오느냐’에 있다. 2025년에 소외된 2차전지나 바이오가 업황 턴을 확인하는 시점이 오면 강한 반발력이 나올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김철중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2026년 2차전지 섹터를 두고 P(판가)·Q(출하) 다운사이클이 마무리 국면에 들어서고, EV 라인의 ESS 전환과 글로벌 ESS 수요 급증이 ‘사이클 전환’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즉, 전기차 중심의 단선적 성장 스토리에서 전력·AI 인프라 확산에 따른 ESS 수요가 업황 바닥을 끌어올리는 구조로 바뀌는 변곡점을 2026년에 예상한 셈이다. 바이오도 비슷한 논리다. 유진투자증권은 2026년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5년은 본격적인 수익 실현이 예정된 2026년으로 다리를 놓아주는 전략적 연결의 시기”라고 정의하며 “파이프라인 성과가 실적과 기업가치 재평가로 이어지는 구간이 2026년에 본격화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결국 기술이전·후기 임상 진전·상업화 가시성이 확인되는 순간, 2025년 내내 눌렸던 밸류에이션이 빠르게 되돌림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ESS 중심의 배터리 수요 회복이나 주요 바이오 파이프라인의 임상 진전이 가시화되면 코스닥의 상대 강세 구간이 열릴 수 있다는 논리다.
밸류업 정책의 연속성도 변수다. 정책이 지속된다면 금융·지주 등 저PBR 섹터가 한국 증시 리레이팅의 바닥을 받칠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정책이 느슨해지면 상승 폭이 컸던 대형주의 숨 고르기와 함께 성장주 로테이션이 빨라질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2026년의 기본 프레임은 ‘주도 업종 지속’이라는 큰 강 위에, ‘소외 업종의 턴어라운드가 언제 합류하느냐’라는 지류가 더해지는 구조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많다. 결국 2025년은 한국 증시가 달라졌음을 수치와 흐름으로 확인한 해다. AI 인프라가 시장의 방향을 결정했고, 전력·원전이 그 인프라의 일부로 재정의됐으며, 조선·방산은 한국이 가장 잘하는 수주 산업이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코스닥은 지수로는 부진했지만, 확률이 높아진 성장주에만 강하게 베팅하는 선별적 시장으로 바뀌었고 그 안에서 알파가 만들어졌다. 대형주는 지수를, 성장주는 수익의 기회를 만든 이중 구조가 2025년 한국 증시의 진짜 얼굴이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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