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별스러울 게 없는 간단한 질문인데 선뜻 그렇다, 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 정도면 그래도 나쁘진 않은 거 같은데, 그렇다 해도 행복하다라고 말하려면 뭔가 좀 더 갖춰야만 할 것 같다.
수치상으로도 그렇다. 지난 3월 유엔이 내놓은 '2025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47개국 가운데 한국의 행복도는 58위를 기록했다. 주요 선진국들 사이에선 최하위권이고 아시아 국가로만 따지자면 대만, 베트남, 태국, 카자흐스탄, 일본, 필리핀 같은 국가보다 낮다. 이런 순위 싸움 참 좋아하고, 힐링이니 뭐니 해서 다들 그토록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했는데도 왜 한국인들은 여전히 행복하다 말하기 어려워할까.
별스러울 게 없는 간단한 질문인데 선뜻 그렇다, 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 정도면 그래도 나쁘진 않은 거 같은데, 그렇다 해도 행복하다라고 말하려면 뭔가 좀 더 갖춰야만 할 것 같다.
수치상으로도 그렇다. 지난 3월 유엔이 내놓은 '2025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47개국 가운데 한국의 행복도는 58위를 기록했다. 주요 선진국들 사이에선 최하위권이고 아시아 국가로만 따지자면 대만, 베트남, 태국, 카자흐스탄, 일본, 필리핀 같은 국가보다 낮다. 이런 순위 싸움 참 좋아하고, 힐링이니 뭐니 해서 다들 그토록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했는데도 왜 한국인들은 여전히 행복하다 말하기 어려워할까.
유엔이 내놓는 ‘세계행복보고서’(WHR) 표지와 속지. 한국은 놀라운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50위권 대에 머물러 경제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행복도를 보이는 대표적 국가로 꼽힌다. 보고서 캡처 |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행복의 기원'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행복이 아닌 다윈적인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좀 까다로운 얘기를 한다. '다윈적 행복'이란 말이 착 입에 와닿는 것도 아닌데 20만 부 이상 팔렸다. 행복에 골몰하는 한국인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서 교수는 1980년대 미국 유학 당시 '행복 심리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에드 터너 교수 밑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누구나 행복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 때만 해도, 그리고 이후 10여 년 동안도 심리학에서 '행복 심리학'은 비주류였다.
이는 심리학의 출발점이 인간의 불행이었기 때문이다. 심리학의 대전제가 '불행을 낮추면, 불행을 털어내면, 사람은 행복해질 거야'였다. '행복이란 무엇이냐'가 아니라 '불행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는가'라는 게 심리학 연구의 초점이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연구가 누적되면서 마침내 깨닫게 됐다. 불행하지 않다고 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는 것을. 불행함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 깨달음을 얻으면서 심리학의 질문은 '어떻게 해야 안 불행할까'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진행된 행복 심리학의 연구 결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서 교수가 '행복의 기원'을 쓴 이유다.
행복을 위해 기억해야 할 10가지 레시피
서 교수가 '행복의 기원'에서 뽑은 행복의 여러 포인트 가운데 핵심적인 10가지를 추려내면 다음과 같다.
1. 행복은 이성적인 게 아니라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다.
2. 인간은 그저 지능이 높을 뿐, 기본적으로 동물이다.
3. 비움, 감사, 느림 같은 각종 행복 테크닉 중독에서 벗어나라.
4. 자아실현 같은 '가치'는 행복과 무관하다.
5. 행복은 객관적 삶의 조건과 큰 상관없다.
6. 돈, 건강, 학력은 일종의 비타민이다. 일정 수준 이상이면 필요없다.
7.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8. 행복은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형태로 자주 느끼는데서 온다.
9.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감이 높다.
10. 늘 행복할 준비를 하고 적재적소에 잘 행복해 하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
먹방, 가장 원초적 형태의 행복 그 자체
행복하기 위해선 일단 인간이 동물적이란 걸 받아들여야 한다. 동물은 생존과 번식이 우선이다. 인간의 뇌도 여기에 맞춰 발달했다. 생존과 번식의 출발점은 좋아하고 마음 편한 사람들과 맛있는 걸 나눠 먹으면서 수다 떠는 거다. 여전히 유행하고 있는 '먹방'을 두고 고상한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지만, 그게 행복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배우 이장우(오른쪽)가 '먹방' 유튜버 쯔양과 순대국을 먹고 있다. 쯔양 유튜브 영상 캡처 |
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하기 위해 영혼, 자아, 심리 같은 것 너무 찾아 헤매지 말라. 그 대신 자신이 즐거움을 느끼는 것들, 행복 확률을 높여줄 수 있는 것들, 이를테면 "친구, 평양냉면, 커피, 메시의 패스, 바흐, 좋은 책, 운전, 여행" 같은 자잘한 것들을 늘 가까이에 두고 또 그로 인해 기뻐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라고.
하지만 한국인은 그렇지 못하다. 집단주의 문화가, 수직적 줄세우기 문화가 강렬하다보니 서로가 서로에 대해 피곤해 하는 만성 피로 사회다. 겉으로 보기엔 혈연, 고향, 학교, 직장을 두고 선배, 후배, 형, 동생 하면서 인간 관계가 풍부한 것 같지만 질적으로는 너무나 허술하고 부족한 사회가 한국이다. 한국에 부족한 건 '경제적인 부'가 아니라 '사회적인 부'다.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게 된 한국인에겐 불행이란 사회적 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억지 행복, 억지 힐링을 내다 버리자
행복 심리학자 서은국 연세대 교수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연구실에서 인간 행복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 '행복의 기원'은, 일단 책이 얇아서 읽는 동안 행복했다.
"하하. 맞다. '행복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했다는 이유로 귀국 뒤에 대중서 하나 쓰자는 제안을 참 많이 받았다. 계속 거절하다 아주 편안하게, 평소에 주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듯 금세 썼던 책이다."
-20만 부 가까이 나갔다는데 인세 때문에라도 참 행복했겠다.
"좀 놀라긴 했다. 평소 친구들에게 하던 얘길 쉽게 쓴 책이라곤 하지만 마냥 말랑말랑한 책은 아니고 그래도 좀 이론적인 게 들어가있다. 그래서 한 500권 나가면 많이 나가겠거니 했는데,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꾸준히 나갈 지, 1년에 강의 요청만 수백개 쌓이게 될 지는 나도 몰랐다."
-책은 행복은 그렇게 거창한게 아니다, 라고 시작한다.
"우린 행복, 이라고 하면 자아실현이나 사회적 성취 같은, 대단한 걸 떠올린다. 한국 사람들은 뭐랄까, 뭔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대단하고 거창한 걸 참 좋아한다. 그러니 행복하냐고 물으면 내 삶에 그런 대단한 게 없으니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행복은 그런 게 아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냥 자기가 즐거운 게 전부다. 그 즐거움이 반드시 위대하거나 대단해야만 할 이유가 있나. 단 하나도 없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했다.
"흔한 자기계발서들이 늘 얘기하는 게 그거다. 우리는 행복해야만 한다고, 그러니 행복해지기 위해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그런데 기본적으로 행복은 감정의 일종이고, 감정은 뇌의 컨트롤을 받지 않는다. 훅 솟아오르는 쾌와 불쾌의 감정이 이성으로 제어되던가. 그러니까 노력하고 연습한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억지 행복, 억지 힐링이 너무 많다."
-그러면 행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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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