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된 계정 수가 사실상 전 국민에 가까운 규모인 3370만개에 달한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놀랐고, 그 범행이 5개월 동안 지속됐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4500건 노출’이라고 알렸던 쿠팡은 하루아침에 7500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를 인정해야 했다. 특히 지난 6월부터 해외 서버를 통해 개인정보가 무단 반출된 점은 기업 내부의 모니터링과 보안 체계가 구조적으로 취약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국내 이커머스 1위, 연매출 40조원, 하루 수천만건의 거래를 처리하는 초대형 플랫폼이라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감시·통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이번 사고를 ‘노출’이 아닌 ‘유출’로 통지하라 요구했음에도, 쿠팡은 끝내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상황을 축소하려 했고, 이는 실망을 넘어 불안감을 키우는 일로 번졌다. 소비자로선 ‘노출’이든 ‘유출’이든 다르지 않다. 일상과 직결된 개인정보가 외부로 빠져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보이지 않는 위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유출 정보엔 소비자의 이름과 이메일,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가 담겼다. 피해자들은 해외 로그인 차단, 소액결제 차단, 결제 한도 축소 등 ‘자구책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하며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스스로 나서고 있다. “이미 털린 마당에 늦은 대응일 뿐”이라는 체념에 가까운 말을 덧붙이면서도 사태를 두고볼 수만은 없다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쿠팡의 최근 일간 이용자는 1800만명에 육박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앞으로 쿠팡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소비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빠른 대용량 배송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영업자부터 어린 자녀를 키우는 가정까지, 일상에 스며든 서비스 구조로 인해 소비자들의 ‘엑소더스’(탈출)는 사실상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울며 겨자 먹듯 이용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형성된 것이다.
이커머스 플랫폼의 등장은 원하는 순간, 원하는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는 생활을 가능하게 했다. 거리와 시간의 제약이 사라지며 유통 패러다임은 완전히 재편됐고 제품 검색 및 비교, 결제, 배송에 이르는 전 과정이 단일 플랫폼 안에서 처리되면서 소비 과정은 획기적으로 단축됐다.
그 결과 소비자는 더 빠르고 손쉬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됐고, 입점업체들은 전 국민을 상대로 시장 접근성을 확보했다. 이러한 흐름은 전통 유통업체까지 변화와 혁신을 쫓는 얼개를 만들었다.
바로 이런 가치들이 우리가 플랫폼 생태계를 쉽게 떠날 수 없는 이유다. 더불어 플랫폼이 신뢰와 안전을 담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대 플랫폼과의 공생이 요구되는 시대에 기술의 혁신성, 그리고 기업의 책무가 엇박자를 내는 장면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이번 쿠팡 사태는 더욱 뼈아프다.
플랫폼 산업의 가장 큰 자산은 신뢰다. 편리해서 쓰던 서비스가 불안해서 쓰기 망설여지는 서비스로 바뀌는 순간, 지금과 같은 성장세는 유지할 수 없다. 소비자 신뢰가 흔들리면 플랫폼에 의존해온 입점업체와 셀러들의 매출 역시 직격탄을 맞는다. 결국 피해는 단일 기업을 넘어 생태계 전체로 확산된다. 플랫폼의 혜택보다 위험이 더 크게 체감되기 시작하면 금융 보안 강화, 감독 시스템 확대 등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 또한 급격히 늘어난다.
플랫폼 산업의 기본 전략이 초기 적자를 끌어안고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는 점은 알려져 있다. 쿠팡은 그 전략을 가장 공격적으로 실행한 기업이다. 지난 2014년 ‘로켓배송’ 시스템을 도입한 뒤 점유율 제고를 위해 ‘의도된 적자’를 감내하며 전국 물류 인프라 구축을 전개했고, 그로부터 8년 만인 2022년 3분기에 첫 흑자 전환을 이뤄냈다. 이후에도 음식 배달, 인공지능(AI) 등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며 시장 1위 지위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수익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성장시킨 속도와 규모가 사회적 책무를 지키지 못한 점을 정당화할 순 없다. 앞서 쿠팡은 홈페이지 등에 올린 사과문을 사흘 만에 내리고 유출 항목 가운데 공동현관 비밀번호 등 일부를 누락해 비판을 자초했다. 플랫폼이 소비자와 공생하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적 책무는 책임성과 안전성이다.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소비자에게는 의미가 없다. 쿠팡 사태는 성장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