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 |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획기적인 음악, 전복적인 주제로 인해 음악사에서 이 작품의 '전과 후'를 나눌 만큼 중요한 위치에 놓였다. 2012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콘서트 형식으로 전막을 초연했지만, 지난 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펼쳐진 국립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 공연은 이 작품의 역사적인 한국 초연으로 기록됐다. 관객의 뜨거운 환호와 갈채로 마무리된 이날 초연은 여러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중요한 한 가지 성공 요인은 탁월한 캐스팅이다. 바이로이트 '니벨룽의 반지'에서 브륀힐데 역을 열연한 영국 소프라노 캐서린 포스터는 투명한 고음과 풍성하고 따뜻한 중저음으로 모든 음역에서 완벽한 소리를 들려줬고, 뛰어난 가사 전달력과 연기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트리스탄으로 유명한 호주 테너 스튜어트 스켈톤은 풍부한 성량과 부드러운 파워 속에 마음을 건드리는 서정적 음색을 담았다.
이졸데의 시녀 브랑게네 역을 노래한 노르웨이 메조소프라노 톤 쿰메르볼드는 명료한 발성과 가창의 안정감이 돋보였고, 트리스탄의 충신 쿠르베날을 노래한 바리톤 레오나르도 이는 진심을 담은 담대한 가창으로 최고의 배역 적합도를 보여줬다. 마르케 왕 역을 노래한 베이스 박종민은 깊은 베이스 음색에 다채로운 감정을 담아냈고, 특히 '마르케 왕의 독백'에서 감정이입을 이끄는 섬세한 표현력으로 관객의 큰 사랑을 받았다. 멜롯 역의 테너 이재명, 목동·젊은 선원 역의 테너 김재일도 귀에 선명하게 꽂히는 음색과 가창으로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 |
약 100명에 달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했지만, 음악은 정교했고 긴장감이 살아있었다. '트리스탄 화음'이 반복되는 매혹적인 전주곡으로 시작해 후반으로 갈수록 음악 몰입도는 점점 높아졌다. 2막 사랑의 이중창이나 3막 목동의 피리소리(잉글리시호른 연주) 같은 부분은 템포를 늦춰 황홀감 또는 애잔함을 강조할 수도 있겠지만 지휘자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시종 빠른 템포를 유지했다. 현악기군도 완벽에 가까웠지만, 목관과 금관은 결정적 시점에 특별히 찬란한 연주를 들려줬다. 오케스트라 음량과 무대 위 성악 음량 간의 밸런스도 적절했다. 다만 일반적인 바그너 오페라 공연과 비교할 때, 지휘자가 무대보다 오케스트라에 훨씬 집중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공연 중에 무대 위 성악가들과 좀 더 긴밀히 소통하면 좋을 듯하다.
국립오페라단 노이오페라코러스(단장 박용규)는 무대 효과를 위해 아크릴 소재의 투명 벽 뒤에서 노래하는 등 성악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었지만, 어느 때보다도 완성도 높은 합창을 선사했고, 단원들은 선원 또는 전사 등 다양한 역할과 연기를 설득력 있게 소화했다.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 |
연출가 슈테판 메르키는 독일 코트부스 극장에서 2023년 연출해 크게 호평받았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우주선 콘셉트를 디테일은 바꿔서 이번 서울 무대에 가져왔다. 그는 에로스에서 타나토스, 즉 사랑에서 죽음으로 건너가는 남녀주인공의 결말을 소멸이 아닌 우주적
확장으로 봤다. 이졸데가 '사랑의 죽음'을 노래한 뒤 죽은 트리스탄이 일어나 이졸데의 손을 잡고 함께 떠나는 마지막 장면도 '죽음'이 아닌 '차원이동'을 연상시켰다.
페터 콘비츠니, 크리스토프 마르탈러, 드미트리 체르냐코프 등의 도발적인 '트리스탄과 이졸데' 연출과는 달리 바그너 원작의 의도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수용한 메르키의 연출은 음악과도 조화를 이뤘다. 이날 여러 관객은 이 작품이 예상보다 어렵지 않았으며 대단히 감동적이었다고 답했는데, 아마도 유려한 연주에 무대와 연출이 흐르듯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 |
'스타워즈'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한 필립 바제너의 의상디자인은 체구가 큰 주역 가수들의 체형을 자연스럽게 커버했다. 탄생, 죽음, 재생의 순환을 상징하는 켈트 신의 모습을 목동에게 입히고 고대 켈트의 '사랑의 매듭' 형태를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춤 동작으로 재현하게 한 것도 연출가의 유의미한 아이디어였다. 바그너와 그의 후원자 오토 베젠동크, 그리고 베젠동크 부인의 삼각관계가 바로 이 오페라의 토대가 되었음은 밀회가 탄로 난 뒤 트리스탄, 이졸데, 마르케 왕이 나란히 자리에 앉는 2막의 연출로 선명해진다.
공연은 두 캐스트로 오는 7일까지 이어진다.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 |
rosina03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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