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미터 앞에서 오른쪽 방향입니다."
시각장애인용 길 안내 앱이 반복해서 음성으로 알려준다. 하지만 이 음성 때문에 정작 중요한 달려오는 오토바이와 같은 주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국내 시각장애인 25만명의 구매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외면하는 '시장 실패' 영역이었다.
김제필 에이드올 대표는 이 문제를 뉴로모픽 AI로 풀었다. 음성 대신 촉각으로 길을 안내하고, 거대한 서버 없이도 로봇 스스로 판단하는 '인공 소뇌'를 만들었다. 올해 에이드올은 자율주행 안내 로봇 '베디비어'로 CES 2025 혁신상 2개 부문을 수상했고, 독일 최고 AI 연구소 DFKI와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용 길 안내 앱이 반복해서 음성으로 알려준다. 하지만 이 음성 때문에 정작 중요한 달려오는 오토바이와 같은 주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국내 시각장애인 25만명의 구매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외면하는 '시장 실패' 영역이었다.
김제필 에이드올 대표는 이 문제를 뉴로모픽 AI로 풀었다. 음성 대신 촉각으로 길을 안내하고, 거대한 서버 없이도 로봇 스스로 판단하는 '인공 소뇌'를 만들었다. 올해 에이드올은 자율주행 안내 로봇 '베디비어'로 CES 2025 혁신상 2개 부문을 수상했고, 독일 최고 AI 연구소 DFKI와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누군가의 팔을 잡고 의지해 걷는 것과 스스로 로봇을 잡고 주도적으로 걷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김제필 대표가 되찾고 싶은 건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이동의 주권'이다.
어머니의 눈과 25만 명의 시장 실패
김제필 대표는 창업 이유를 "두 가지 결핍"으로 설명한다. 하나는 개인적인 시간의 결핍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의 결핍이다.
"어머니께서 눈이 안 좋으세요. 그런데 저는 24시간 어머니 옆에서 수발을 들 수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연세가 많으시니 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은 한정적입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나 기업이 이 문제를 풀고 있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선심성 서비스 몇 종이 있을 뿐이고, 그 서비스는 가장 어려운 분들을 위해 쓰여야 하니 저희 어머니까지 차례가 오지 않습니다."
김제필 대표는 이를 '시장 실패'라고 정의한다. 우리나라 등록 시각장애인은 2024년 기준 약25만 명이다. 이 중 심한 시각장애인은 4만 5천 명 정도 된다. 시장이 너무 작고, 돈을 낼 능력도 부족하다. 당연히 기업들이 외면한다.
"이 돈 안 될 구석을, 돈을 벌면서 좋은 서비스로 만들 수 있는 건 대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매력이 약한 사용자에게 아무도 최첨단 기술을 주지 않는 전형적인 시장 실패를, 내가 해결해 보겠다는 일종의 오만이랄까요."
음성 대신 촉각, 안내견처럼 길을 알려주다
베디비어가 기존 서비스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사용 방식이다. 기존 길 안내 앱들은 대부분 GPS로 위치를 잡고 '5미터 앞에서 오른쪽으로 가세요'와 같은 음성으로 길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 반복적인 음성 안내는 문제가 있습니다. 카페에서 친구와 이야기할 때처럼 다른 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 그런데 주변 소리는 시각장애인 분들에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내 옆으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지, 맞은편에 차가 달려오는지... 이런 것들을 소리로 듣고 판단하시거든요."
그래서 베디비어는 말 대신 촉각, 정확히는 '고유수용성 감각'으로 길을 안내한다. 우리 몸이 균형을 잡고 움직임을 느끼는 감각이다.
"인간 길잡이의 지능을 안내견의 사용법으로 바꿔 전달한다"고 김제필 대표는 설명한다.
두 번째 차이는 기술이다. 에이드올은 '뉴로모픽 인공지능'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자율주행 로봇은 강력한 컴퓨터를 써서 전기를 많이 쓴다. 그러려면 배터리 크기가 엄청나게 커진다.
"발전소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셈입니다. 그런데 뉴로모픽 인공지능은 계산이 아주 가볍죠. 그러니 전기 사용량이 적습니다. 저희는 '인공 소뇌'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다닐 때 머릿속에서 복잡한 수학 계산을 하지 않잖아요. 우리 뇌는 아주 짧은 순간만 보고, 끊임없이 자세를 고칩니다. 저희 로봇도 비슷해요."
이런 방식으로 거대한 서버와 연결하지 않고도, 로봇 스스로 어디에 있는지, 주변이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고 움직인다. 통신이 끊긴 지하철이나 처음 가는 건물에서도 바로 사용할 수 있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저렴한 부품으로 어떻게 빠르게 계산할 것인가"였다. 처음에는 한 번 계산하는 데 40초나 걸렸다. 해결 방법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었다.
"로봇의 정확한 위치를 계산하려는 강박을 버리고, 로봇을 중심으로 주변과의 관계만 파악하는 데 집중했어요. 계산 방식을 단순하게 만들고, AI가 전체가 아닌, 변화만 보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계산량을 크게 줄일 수 있었죠."
에이드올은 로봇 회사처럼 보이지만, 진짜 핵심은 로봇 안에 들어가는 '온디바이스 AI 추론 플랫폼'이다. 플랫폼 이름은 '하릴(HARIL)'이다.
베디비어는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충직한 외팔이 기사 이름이다. 사용자에게 충실한 길 안내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붙였다. 하릴은 우리말 '하릴없다'에서 따왔다. 원래는 '흠잡을 데 없다'는 뜻인데, 요즘은 '할 일 없다'로 알고 있어서, "할 일 없는, 즉 계산을 효율적으로 하는 인공지능"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이 하릴 플랫폼이 저희 핵심입니다. 냉난방 시스템, 스마트팜, 드론 업체 등에서 사고 있어요. 플랫폼 자체는 형태에 구애받지 않으니 여러 곳에 쓸 수 있죠. 저희가 창업 2년이 채 되지 않은 딥테크 하드웨어 기업인데도 벌써 매출이 발생하는 이유죠."
에이드올의 초기 시장 전략은 명확하다. 최종 사용자는 시각장애인이지만, 돈을 내는 건 정부와 기관이다.
"저 혼자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거나 시장을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미 돈이 쓰이고 있는 곳을 공략해야 해요. 시각장애인 보조기기 시장이 잘 만들어져 있고, 법으로 사줘야 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런 곳들을 먼저 공략합니다. 구매력이 확실하고 이미 큰 돈이 움직이고 있거든요."
CES 2025에서 혁신상 두 개를 받았다. 하나는 인공지능(AI), 하나는 모두를 위한 인간 안보 부문이다. 김제필 대표는 "CES 혁신상은 베디비어의 신뢰도를 높이는 증명서 같은 것"이라며 "저희가 제안하는 급진적인 기술이 시장에 가져올 혁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독일 최고 AI 연구소인 DFKI에서 공동연구 제안을 받았다. "세계 최고 연구소에서 선제안을 받아, 저희의 기술개발 방향성의 타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이 공동연구가 보수적인 정부 구매 시장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겁니다."
기술이 아닌 존엄, 이동의 주권을 되찾다
김제필 대표가 만드는 기술은 단순히 부족한 기능을 보완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와 자율, 이동권을 되찾기 위한 기술입니다. 누군가의 팔을 잡고 의지해 걷는 것과, 내 손으로 로봇을 잡고 주도적으로 걷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완전히 다릅니다. 기술을 통해 사용자가 다른 사람 도움 없이도 자기 의지대로 세상을 탐험할 수 있는 권리, 즉 이동의 주권을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단기 목표는 베디비어의 미국 시장 안착과 대량 생산 체계 구축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지능형 로봇의 에너지 낭비 문제를 해결한 표준 기술로 자리 잡는 것이다.
그는 "세상에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하다. 가장 훌륭한 기술은 가장 적은 에너지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하는 기술"이라며, '이 철학을 앞으로 증명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머니의 눈이 되고 싶었던 아들이 만든 로봇에는 '인공 소뇌'가 들어있다. 25만 명의 시장 실패를 온디바이스 AI로 해결하고, 정부 구매 시장에서 범용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전략. 그 중심에는 '이동의 주권'이라는 철학이 있다.
김제필 대표가 증명하려는 건 기술이 아니라 존엄이다. 가장 적은 에너지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하는 기술, 그것이 에이드올이 존재하는 이유다.
문지형 스타트업 기자단 jack@rsqu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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