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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창] 괴물 이야기에 가려진 ‘도덕적 끔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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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립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명예교수
<‘프랑켄슈타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2025년>


영화는 초반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 그 부자 관계와 비슷한 관계가 빅터와 그의 괴물 사이에서도 되풀이된다. 그걸 만들기 위해 온 에너지를 바쳤던 그는 완성이 되자 ‘공허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사랑이 없다. 감독도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듯이, 이런 부자 관계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모티프다.

그러나 이것은 원작 소설과 중요하게 다른 면이 있다. 자신을 잘 돌봐주지 않는 부모에 대해 우리는 흔히 “날 왜 낳으셨나요?”라고 원망한다. 그러나 메리 셀리의 1818년 소설에서는 빅터와 괴물의 관계가 신과 아담의 관계와 비슷하다. 아담도 ‘아버지’를 원망한다. 그러나 다르다. 그 원망하는 부분이 책의 서두에 인용되어 있다. 밀턴의 ‘실낙원’에 나오는 대목이다. “창조주여, 내가 부탁했나요, 흙에서 날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애원이라도 했나요, 암흑에서 날 끄집어내어 달라고?”

주류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몸은 부모에게서 태어나지만 혼은 신이 부여한다. 아담은 이 혼(정신, 자의식)을 가진 걸 한탄하는 것이다. 우리가 부모를 원망하는 것과는 다르다. 소설에서 괴물은 ‘실낙원’을 읽었고 자신을 아담에 비교한다. 그리고 빅터가 자신에게 ‘존재의 불꽃’을 부여한 걸 원망한다. 표현이 약간 다르지만 ‘실낙원’에서 아담이 한 말과 같다. 영화에서도 괴물이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읽었다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자신을 아담에 비교하지 않고, 유사한 존재론적 고민을 하는 부분도 없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 싶어했지만, “쓰레기와 버려진 시체들을 이어 붙인” 것임을 아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하다.

이런 차이의 한 원인은 현대 사회가 옛날처럼 종교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종교는 그 괴물의 외모가 갖는 의미와도 연결된다. 영화를 보면 빅터의 그 창조물이 꼭 흉측하게 생겨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정도면 성형 수술은 별게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애초에 하나의 시신으로 시작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실험도 훨씬 간단했을 것이다. 그런 시신을 구하기가 어려웠겠지만 가령 지인이 죽으면서 시신을 맡긴다는 설정을 할 수도 있지 않나. 아무튼 흉측함을 위한 흉측함으로 여겨졌다. 평범한 외모였으면 본질적인 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작의 경우엔 그 흉한 외모에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셀리는 그 창조물을 아담에 비유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특정인을 되살리는 것보다 무(생물)에서 탄생하는 걸 원했을 것이다. 또 중요한 건 그때는 인간이 과학기술로 인간의 생명을, 혼을 창조하는 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었다 (물론 현재도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래서 책의 부제목이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이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일부 평자는 셀리의 소설을 불경하다고 비난했다. 칭찬한 평자도 내용이 ‘대담’하다고 했다. 그런 신앙심 깊은 사회에서 신을 거스르는 행위는 무서운 것이었을 게다. 그래서 셀리는 그 정서를 창조물의 외모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건지 모른다. 말하자면 도덕적 끔찍함을 외모의 끔찍함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필자의 해석이 맞다 해도, 이제 200년이 지나 종교가 쇠퇴하고 세속화된 세상에서 그 흉한 외모는 심리적, 상징적 역할을 거의 잃고 흔적만 남았다. 그렇다고 델 토로의 영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프랑켄슈타인 영화가 원작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역사를 잠시 돌아보고 싶었고, 또 원작이 제기한 존재론적 문제는 여전히, 그리고 아마 영원히, 남아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비난하려고 한 건 아니라 했지만 하나는 짚고 가고 싶다. 그 창조물이 왜 그렇게 초자연적인 힘을 가져야 하나. 거대한 배를 혼자 맨몸으로 밀어서 세우다니! 요즘의 할리우드 영화를 생각하면 새삼스러울 게 없긴 하다. 마지막에 그는 회한에 차서 “부서진 채 살아가리라”라는 멋진 말을 남기며 사라진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초자연적 힘으로 인류를 돕는 게 어떠냐고 묻고 싶다.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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