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6 l 수신지 글·그림, 귤프레스(2025) |
책보다 드라마를 더 많이 본 나는 자칭타칭 드라마 도사다. 나의 드라마 내공은 자못 높아 어지간한 사람은 손발이 오그라들어 보지 못한다는 작품도 나는 신나게 본다. 그런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드라마가 있었다. 미니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안방 극장을 휩쓴 드라마들. 재벌 2세인 남자주인공 A와, 비슷한 집안에서 그와 함께 자라 암묵적으로 미래를 약속한 여자주인공 B, 그리고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비련의 여주인공 C가 등장하는 드라마다. 이것만 들어도 어지간한 사람은 이 드라마의 줄거리를 안다. A가 C를 좋아하자 이를 질투한 B가 C에게 갖은 모략과 핍박을 가하지만 결국 B의 만행이 드러나고 A와 C의 사랑은 이루어진다.
주인공만 바꿔가며 수십년 되풀이된 저 이야기에는 사실 깊은 역사가 있다. ‘춘향전’부터 식민지 시기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바로 삼각관계라는 구도 안에서 펼쳐진다. 어쩌다 보니 삼각관계가 뭔가 비도덕적이고 저열하게 느껴지지만, 문제는 삼각관계 자체가 아니라 삼각관계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삼각관계에서 비롯한 갈등 구조는 남녀 사이뿐 아니라 친구나 형제 관계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니, 삼각관계는 인간 관계사의 축소판인 셈이다. 그러니 삼각관계를 다루는 이야기의 성패는 질투하는 인물 B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수신지·귤프레스)는 그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신선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자로 잰 듯 반듯한 모범생인 반장 이아랑, 아랑의 친구이자 아랑이 때문에 영원한 2등인 곽연두, “오늘만 잘 넘어가자”가 모토인 하은. 이 세 인물을 주축으로 하는 이야기는 일상툰처럼 술술 넘어가지만, 사실 욕망과 질투라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깊숙하게 들여다본다.
작품은 시작부터 만년 2등인 연두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1등인 아랑에게 당연하다는 듯 반장을 맡기는 담임선생님부터, 자율학습 시간에 아랑이만 도서실에 내려가서 공부할 수 있게 배려하는 감독 선생님의 모습은 연두의 마음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거기다 “연두는 올해 1등 한번 해봐야지?”라는 선생님의 발언과 아랑을 연두의 라이벌이라고 말하는 연두 아빠의 모습까지, 작품은 질투라는 감정이 사회와 환경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차분하게 좇는다.
연두는 분초를 아껴가며 공부하지만,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 거 다 노는 사람으로 비춰지기’ 위해 동생에게 드라마와 음악방송 줄거리를 듣고 마치 자신이 본 것처럼 이야기한다. “아직 1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만 하지 않기 때문에 2등이라는 변명이 필요한 연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질투심도 사라질까?’ 연두는 누군가를 질투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지만, 수학여행을 전후로 아랑과 연두의 사이는 틀어져 버린다.
기말고사에서 ‘내 것인 줄 알았던’ 1등을 놓친 아랑은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게 된다. “1등 하려고 공부한 거 아니잖아, 최선을 다했으니까 괜찮아.”라고 되뇌지만, 계속되는 한숨 끝에 아랑은 발견한다. “아니야. 안 되겠어. 나는 1등이 편해.” 여기에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은이 흘린 눈물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그야말로 삼각관계가 드러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질투는 ‘여자들이나 하는’ 싸구려 감정이 아니다. 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질투에 사로잡힌 위대한 장군의 몰락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질투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며,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욕망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우리를 자라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다. 그렇게 “질투는 나의 힘”이 된다.
송수연 청소년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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