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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점=독점” 지구보다 더 지구같은, 우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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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새벽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 모습.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지난달 27일 새벽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 모습.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눈을 감고 우주를 떠올려보자.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암흑. 이러한 이미지 탓에 우주는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무한한 공간으로 인식되곤 한다. 오해다. 현실 우주는 정반대에 가깝다. 위성을 띄울 궤도는 지구의 부동산만큼이나 “제한된 자원”이고, 이 유한성은 쉽게 배타성으로 귀결되곤 한다. 우주는 넓어도 돈 없고, 힘없는 자가 갈 곳은 벌써부터 협소하다. 우주는, 지구보다 더 지구다워지고 있다.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는 우주의 불평등성을 집중 조명한 책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의 우주위험감시센터장 최은정이 썼다. 최 소장은 지난 2014년부터 유엔 ‘외기권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COPUOS)에서 한국 대표단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작 ‘우주 쓰레기가 온다’(2021)에서 우주 쓰레기의 존재와 위험을 알린 최 소장은 논의를 더 확장한다. 우주는 어쩌다 불평등의 무대가 되었는지, 이 불평등이 가져올 위험은 무엇인지, 우리는 점점 더 ‘기울어지는 우주’를 어떻게 인류를 위한 공유재로 바로 세울 수 있는지 설명한다.



우주는 지구 대기권 바깥 100㎞ 지점(카르만 라인)을 넘어선 공간을 말한다. “과학적으로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발사체를 개발하거나 임차하지 못한 국가라면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이다. 선착이 곧 독점이 되는 제국주의의 문법이 희박한 감시 속에서 공공연히 통용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l 최은정 지음, 갈매나무, 2만1000원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l 최은정 지음, 갈매나무, 2만1000원


무한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궤도’는 제한된 인프라다. 궤도는 △저궤도(고도 500∼2000㎞) △중궤도(고도 2000∼3만5786㎞) △정지궤도(적도 상공 고도 3만5786㎞)로 분류된다. 저궤도는 통신·관측·과학 실험용 위성, 중궤도는 지피에스(GPS)에 이용되는 항법 위성, 정지궤도는 기상·통신·정찰 위성이 주로 운용된다. 이 가운데 인공위성을 배치하기에 가장 적합한 ‘알짜’로 손꼽히는 곳이 정지궤도다. 높은 고도 덕분에 광범위한 커버리지가 가능한데다, 정지궤도를 따라 공전하는 위성은 그 속도가 지구의 자전 속도와 동일해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여 관측상의 편의점이 있다. 여기에 공간도 한정적이라 극심한 궤도 슬롯(slot) 경쟁이 펼쳐지는데, 정지궤도의 80% 이상은 이미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이 점유하고 있다. 궤도와 주파수 사용 신청이 ‘우선 신청주의’(선착순)로 이뤄지며 그 권리는 거의 영구적으로 보호받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1980∼1990년대 집중적으로 등록하면서 궤도 독점화가 고착화됐다.” 일종의 ‘알 박기’도 행해진다. “선진국이나 거대 기업은 수백에서 수만개의 궤도 슬롯을 미리 신청해 점유해 놓고 실제로는 일부만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지 감시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궤도가 등록 후 몇년 이상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다. (…) 궤도를 신규로 등록하려면 기존 슬롯 간섭 여부를 입증해야 하는데, 우주상황인식 시스템이 없는 개발도상국은 이를 증명하기도 어렵다.”



지구보다 더 가차 없는 ‘사다리 걷어차기’가 빚어지는 또 하나의 요인은 대다수 우주 기술이 민군 겸용(dual use)이기 때문이다. 우주 관측용 허블망원경이 방향을 돌리면 정찰용 군사 무기가 되는 것처럼 “우주 기술의 대부분은 민군 이중 용도로 분류되어서 기술 이전이나 수출, 공유를 제한받”는다. 공급망 자체가 폐쇄적이라 기술 격차가 고착화되기 쉬운 환경이다. 어렵게 발사체, 위성 개발 같은 하드웨어를 갖추더라도, 초기 시험 인프라를 갖추는 단계에서 좌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은이는 “2022년 6월 우리나라도 자체 개발한 ‘누리호’로 위성 발사에 성공하면서 세계 일곱번째 발사체 보유국이 됐”지만 “여전히 핵심 고급 센서와 알고리즘, 대부분의 위성 발사를 타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짚는다. 지난달 27일 발사된 4번째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면서 우주 강국 가능성이 엿보이는 듯하지만,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와 선발 국가 사이 격차는 여전히 상당하다.



우주 진입 과정의 불평등이 증폭돼 ‘종속’에 이를 가능성도 지은이는 경고한다. “우주는 데이터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의 기후를 감시하고 예측해 왔고, 저궤도 위성은 하루에도 수천번씩 전세계 주요 도시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촬영한다. (…) 통신 위성은 국경을 초월하여 정보를 전달한다.” 위성을 통해 확보한 기후·농업·재해·해양 주권 관련 데이터를 우주에 선진입한 특정 국가나 기업이 독점하면, 우주력이 미진한 후발 주자는 주권이 위협받는 수준의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스타링크(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스페이스 X의 위성 통신망)가 우크라이나에 통신망을 지원하고, 또 차단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숙이 관여한 사태가 지은이의 우려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암시한다.



우주적 불평등을 조정할 대안은 있을까.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이후 우주에서 미·소 충돌 가능성이 커지자 1960∼70년대 유엔 주도로 국제 우주법 체계가 마련되었지만, 조약·협약 내용 대부분이 선언이나 권고에 그친다고 지은이는 꼬집는다. 단적으로 1967년 발효된 ‘우주조약’은 “우주는 인류 공동의 것”이라는 문구를 담았지만, 미국, 일본 등 일부 국가는 자국 민간 기업의 우주 자원 이용과 판매권을 법으로 인정한 상태다. 이와 관련된 국제적 합의가 멈춘 상태에서 우주의 민영화도 결코 먼 일이 아니다. 지은이는 민간에 대한 허가 감독 절차를 국제적으로 표준화하고, 상업적 활동의 환경 영향 평가를 제도화하며, 글로벌 우주상황인식 데이터 공유를 의무화하는 일들이 시급하다고 제안한다.



과학자의 눈으로 우주 진출의 역사, 변곡점 등을 친절히 설명하면서도 사회학자의 눈으로 불평등을 예민하게 감각한 책이다. 상대적으로 대안의 비중이 적은 것, 독자의 이해를 도울 이미지 자료가 적은 것은 다소 아쉽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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