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
최근 정부와 관계기관이 취약채무자의 경제적 회복을 위해 다양한 제도정비에 나섰다. 이 중 새도약기금은 장기연체로 정상적인 금융생활이 어려운 채무자에게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표적 사례다. 금융회사에서 7년 이상 연체된 원금 5000만원 이하 무담보채무를 일괄매입한 뒤 상환능력에 따라 채무조정이나 소각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국내 채무조정 제도는 신용회복위원회의 사적 조정, 법원의 개인회생·파산 등 공적 제도, 그리고 새출발기금·장기소액연체 지원 등 특례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그 외에 채무자 지원을 위해 법률구조공단의 개인회생·파산 및 채무자대리인 지원제도와 서울시 금융복지상담센터의 상담 등도 마련돼 있다. 그러나 채무문제로 일상이 흔들리는 서민들의 체감개선은 여전히 미흡하다.
취약채무자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성실히 상환 중인 채무자라도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불안정한 소득 때문에 언제든 연체위험에 노출된다. 채권이 매각되면 과잉·불법추심 가능성까지 커진다. 이미 채무조정에 실패한 이들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채무조정으로 조정된 채무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 속에서 장기연체자로 고착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때문에 새도약기금 도입은 의미가 있지만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현행 정책의 한계는 금융채무 중심의 사후구제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일부 비금융채무 감면을 포함하는 등 개선은 있지만 취약채무자의 재기를 지원하는 데는 매우 부족하다. 채무조정이나 개인회생을 통해 금융부담이 줄어들어도 다수의 취약채무자는 여전히 불안·우울감, 가족관계 단절, 의료·주거비 부담 등 복합적 문제를 겪는다. 결국 채무가 재발하거나 재파산에 이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따라서 채무조정 정책은 단순한 '부채조정'이 아니라 재발방지와 재기지원을 포함한 복합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연체 초기단계의 단기·예비 취약채무자에 대한 선제적 개입이 필요하다. 성실상환자라도 위기징후가 보이면 즉각 지원해 장기연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금융지원을 넘어 심리상담, 주거안정, 의료·돌봄 등 복합적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 채무 악순환의 배경은 경제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채무조정 이후 일정기간 사후관리와 재발방지 프로그램을 운영해 재회생·재파산을 예방해야 한다. 넷째, 정부-금융회사-법원-복지기관간 위기 조기발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연체 초기, 소득급감, 다중채무 증가 등 위험신호를 실시간으로 포착할 수 있는 정보공유 체계가 마련된다면 채무악화의 상당부분을 예방할 수 있다.
취약채무자 문제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 위험에서 비롯된 사회적 문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도약기금과 기존 채무조정 제도는 중요한 기여를 하지만 사후구제 중심의 정책만으로는 장기연체의 악순환을 근본적으로 끊어내기 어렵다. 늦지 않게 선제적 예방, 복합적 지원, 지속적 사후관리로 이어지는 '예방 중심의 채무관리 체계'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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