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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한 모금에 수육 한 점… ‘칼국수 도시’서 누리는 호사[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동아일보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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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둔산동 ‘대선 칼국수’의 대표 메뉴 칼국수. 가격은 9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대전 서구 둔산동 ‘대선 칼국수’의 대표 메뉴 칼국수. 가격은 9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한국 사람들, 가만 보면 면을 참 좋아한다. 도시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면음식이 있을 정도다. 인천이 짜장면의 도시이고, 부산은 밀면의 도시이고, 춘천이 막국수의 도시라면 대전은 칼국수의 도시다. 칼국수라는 게 워낙 대중적인 음식인지라 그걸 특정 도시의 상징적 음식이라고 말하는 건 다소 어폐가 있지만, 대전이 칼국수의 도시인 건 확실하다. 믿을 만한 통계를 보면 도시별 칼국숫집 분포는 대전이 압도적인데, 2023년 말 기준 약 700개의 칼국숫집이 영업 중이다. 인구 1만 명당 5개꼴로, 전국 광역시 중 1위다.

대전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출구를 나서면, 어디선가 은은한 멸치 향이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치고 그 냄새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 냄새를 되짚어 5분 정도 걷다 보면 노란색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대선칼국수’. 이름 자체가 주는 강직함과 소박함이 이미 풍요로운 한 끼를 예약한 듯싶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부산스러우면서도 질서 정연한 주방의 소리다. 칼국수 면을 한 움큼 쥐고 쫙쫙 뽑아내는 손놀림, 깊고 맑은 육수가 보글거리는 주방의 숨결. ‘아, 이 집은 제대로 된 노포구나’ 하는 느낌이, 말보다 먼저 가슴에 와닿는다.

자리에 앉아 칼국수를 주문하면, 주방에서부터 육수 향이 먼저 달려온다. 멸치와 다시마가 오래 우러난 국물은 군더더기가 없고, 한 숟가락 뜨는 순간 마음이 먼저 풀린다. 쑥갓이 살짝 눌러주는 산뜻한 향, 들깨와 김가루의 고소함, 손으로 뽑은 면발의 은근한 탄력까지…. 시원하면서도 깔끔하고, 담백하면서도 깊다.

대선칼국수가 처음부터 대전 신도심에 속하는 둔산에 있었던 건 아니다. 1954년 대전역 앞에서 시작해 중구 대흥동 시대를 거쳐 200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71년이라는 전통도 전통이지만, 이 집의 진짜 매력은 칼국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메뉴판 한쪽에 소박하게 적힌 수육이야말로 단골들이 이 집을 기억하게 하는 특별한 맛이다. 김이 피어오르는 접시 위에는 섞박지처럼 어슷하게 썰어낸 고기가 올려져 있다. 기름이 번들거리지 않고 냄새 한 점 없이 부드럽다. 껍데기는 쫀득하고 살코기는 부서지듯 고운데 젓가락으로 집어 들면 탱탱함마저 느껴진다. 칼국수 국물 한 모금, 수육 한 점이 이어지면 그 조화가 참 마뜩하다. 한 끼의 소박함이 안겨주는 깊은 호사라고 해야 할까.

필자도 대전이 연고지여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대선칼국수는 현지 사람들이나 지금은 대전을 떠나 타지에 사는 이들에게 공히 노스탤지어를 안겨주는 노포다. 구도심인 대흥동에 있을 때부터 식객과 단골들에게 친정 같은 역할을 했다. 집밥에 물리거나 늘 거기서 거기인 식단이 고민스러울 때 가족과 함께 외식할 장소로 선택받는 곳이었다. 아니면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학교 동창이나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약속 장소로 잡는 곳이 대선칼국수였다. 왜냐하면 그 선택에 결코 후회할 일이 없었으니까.


이곳 ‘명품’ 칼국수 가격은 9000원, 수육은 소(小)자가 3만 원이다. 대선칼국수 사람들은 매일 오전 11시 반에 문을 열고 오후 10시에 문을 닫는다. 앞으로도 최소 70년은 더 갈 집이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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