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12월을 맞으며 새삼 간절히 곱씹게 되는 말이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무언가 크게 무너졌고, 국회 앞으로 달려나간 이들과 함께 무언가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누구도 안녕할 수 없었던 시간 동안 서로의 안녕을 물으며 민주주의를 안녕하게 할 투쟁을 이어갔다. 민주주의는 우리를 조금 더 안녕하게 하는 일이리라.
친위 쿠데타로 드러난 민주주의의 위기가 몇달 안에 씻은 듯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반성도 사과도 없는 자들의 몰염치를 지켜봐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안녕하기 어렵다. 그런데 안녕치 못하게 하는 일들은 그뿐이 아니다. 지난주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라는 점은 상식이다. 집회 장소가 집회 자유의 본질적 요소임은 헌법재판소도 여러 차례 밝혔다. 비상계엄을 중단시키려 국회 앞으로 달려간 시민들에게는 찬사를 보내지만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이제 집회는 자제하라는 것인가.
그 며칠 전에는 정부가 노조법 개정에 따른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두 번이나 거부권으로 틀어막던 윤석열을 파면시키고 이룬 개정이었다. ‘진짜 사장’과 교섭하기 위한 오랜 투쟁의 결실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낸 시행령안은 교섭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절차를 다 거치고 나면 교섭할 수도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누구와 무엇을 교섭할지 스스로 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권리일 수도, 민주주의일 수도 없다.
친위 쿠데타로 드러난 민주주의의 위기가 몇달 안에 씻은 듯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반성도 사과도 없는 자들의 몰염치를 지켜봐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안녕하기 어렵다. 그런데 안녕치 못하게 하는 일들은 그뿐이 아니다. 지난주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라는 점은 상식이다. 집회 장소가 집회 자유의 본질적 요소임은 헌법재판소도 여러 차례 밝혔다. 비상계엄을 중단시키려 국회 앞으로 달려간 시민들에게는 찬사를 보내지만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이제 집회는 자제하라는 것인가.
그 며칠 전에는 정부가 노조법 개정에 따른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두 번이나 거부권으로 틀어막던 윤석열을 파면시키고 이룬 개정이었다. ‘진짜 사장’과 교섭하기 위한 오랜 투쟁의 결실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낸 시행령안은 교섭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절차를 다 거치고 나면 교섭할 수도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누구와 무엇을 교섭할지 스스로 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권리일 수도, 민주주의일 수도 없다.
내란 이후 집권한 세력은 자신의 안녕을 민주주의로 여기는 것도 같다. 자신들의 안정적 집권이 민주주의라는 듯. 검찰·언론·사법 개혁은 시급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흔들 수 있는 정치개혁은 뒤로 밀린다. ‘내란 청산’과 ‘진짜 성장’을 명분으로 수많은 사회대개혁 과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의 충격과 극우의 세력화가 낳는 불안은 강한 국가와 강한 민주주의를 혼동시킨다.
불안정노동이 확산되고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다투기 점차 어려워진 신자유주의와 함께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득, 시간, 건강, 사회적 관계와 인정 등 삶의 거의 모든 것이 정해진 구조에서 이쪽이냐 저쪽이냐 선택할 자유만 주어진 것을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권력이 정한 문제에 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하는 권력이 되어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비상계엄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했는지 충격적으로 드러낸 동시에 민주주의를 기사회생시킨 시민의 저력과 사회적 힘을 확인시켰다. 그런데 민주주의 회복의 과제는 전자에 집중되고 있다. 제도가 튼튼하면, 지도자가 강건하면, 관료들이 민주적이기만 하면 민주주의가 강해질까? 그럴 리 없다. 우리가 강해져야 민주주의도 강해진다.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했던 저력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과 일상에서도 빛나게 하는 일이 민주주의의 과제다. 광장에서 낸 용기가 일상에서도 응원받도록, 광장에서 본 희망이 현장에서도 응답받도록.
윤석열이 대통령 된 나라까지 바꾸자고 다짐하며 광장을 지켰던 여러 운동들이 집회를 준비 중이다. <가자, 평등으로! 12·10 민중의 행진>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노동이 존엄한 나라, 기후정의 당연한 나라, 공공성 든든한 나라, 진보정치 빛나는 나라’라는 부제를 달았다. 또 다른 무엇으로 그리든 우리가 안녕할 나라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모이고 말하고 행동하는 크고 작은 자리들이 이어질수록 가까워진다. 비상계엄 이후 세상이 혼탁하고 일상이 헝클어지는 동안에도 안녕했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어디에 있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하며 벅찼던 순간들. 위협도 불안도 긴장도 결핍도 없어서 안녕했던 것이 아니다. 위기를 함께 겪고 있음을, 결정하는 자와 위험을 떠안는 자가 구분되지 않을 것을 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등으로, 우리는 안녕했다.
평등은 우리가 향해 갈 목적지이기만 하지 않다. 우리가 함께 갈 민주주의의 방법이기도 하다. 고진수와 박정혜와 지혜복을 남겨두지 않고, 김충현과 뚜안을 잊지 않으며, 서로 다르게 겪은 차별에서 연대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이들과, 우리 사회에 목숨과 돈을 놓고 선택하라는 일자리가 있다면 나도 안녕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과, 서로의 용기를 빌리며 서로의 언덕이 되어주는 이들과, 가자, 평등으로. 우리의 일상과 현장에서 우리가 강해지기를. 우리가 안녕하기를.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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