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앞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 헤럴드미디어그룹 대표이사와 김병원(앞줄 왼쪽 일곱 번째) 한국생명과학기술연구원 회장 등 내외빈이 지난달 2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한국농업 미래혁신포럼’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양=임세준 기자 |
“한국은 이제 쌀을 잘 ‘쓰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 쌀 위스키 같은 고부가가치 품목을 만드는 산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K-라이스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민승규 세종대 석좌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는 지난달 2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1전시관에서 열린 헤럴드미디어그룹·한국생명과학기술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2025 한국농업 미래혁신포럼’에서 “남는 쌀 시대를 넘어 산업적 수요 기반을 만드는 것이 한국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부족의 시대’, ‘과잉의 시대’ 거쳐 ‘산업 전환의 시대’=올해로 4회차를 맞은 한국농업미래혁신포럼은 이날 ‘스마트 식량산업, 쌀의 미래를 말하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민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한국 쌀 산업이 ‘부족의 시대’에서 ‘과잉의 시대’를 거쳐 이제 ‘산업 전환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짚었다. 그는 “해방 이후 70여년간 한국 농업은 늘 쌀 문제를 중심으로 움직여왔다”며 “오늘의 위기는 소비 감소, 생산 고정, 정부 개입이 겹친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05년 80.7㎏에서 2023년 56.4㎏으로 약 30.1% 줄었다. 같은 기간 생산량은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만성적인 공급 과잉이 이어졌다.
민 교수는 “정부는 쌀값 급락을 막기 위해 시장격리를 반복해왔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며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시장에서 격리한 물량만 333만톤, 재정 손실은 9조3000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농업소득 정체도 심각하다. 농업소득은 1995년 1047만원을 기록한 뒤 20년째 1100만~1200만원 수준에 그친다. 농가소득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04년 41.6%에서 2023년 21.9%까지 떨어졌다. 민 교수는 “쌀 산업의 정체는 농업 전체 소득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농촌 고령화, 인구 감소, 생산 기반 위축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배경으로 쌀의 산업적 확장 부재를 지적했다. 민 교수는 “벼농사는 농가·농지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농업생산액에서 쌀 비중은 13.6%”라며 “기계화율 98.2%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활용·가공 구조는 1970년대 수준에 묶여 있다”고 했다. 이어 “한국은 쌀을 잘 ‘관리’하는 나라일 뿐, 쌀을 산업적으로 활용하는 데에는 매우 소극적”이라고 부연했다.
쌀 공급 과잉의 구조적 원인으로 ▷소비 급감 ▷생산 고정 ▷정부 개입 등 세 가지를 꼽았다. 민 교수는 “농가가 다른 작물로 전환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쌀 생산이 고정돼 왔고, 정부는 가격 안정 명목으로 시장에 지속 개입해왔다”며 “이 구조에선 생산자, 소비자, 정부 모두 손해”라고 분석했다.
▶일본, 이탈리아 산업 전환의 좋은 사례=그러면서 쌀 산업 전환의 좋은 사례로 일본과 이탈리아를 들었다.
일본은 연간 20만~25만톤의 주조용 쌀(사케마이)을 별도로 관리하며 고품질 주류 시장을 육성했다. 이 전략은 사케 수출액이 2024년 435억엔까지 증가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일본은 2050년 100만톤 규모의 쌀 부족이 예상되자 초다수확 벼 개발과 프리미엄 시장 확장에 더 속도를 내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숙성(Aging), 배아 재첨부 등 고난도 가공기술로 프리미엄 시장을 창출했다. 이탈리아의 대표 프리미엄 쌀 브랜드 ‘아퀠렐로(Acquerello)’는 1㎏당 약 7만원으로 한국 쌀 대비 10~15배 비싸다. 민 교수는 “이탈리아 사례는 생산량이 적어도 기술·브랜딩·가공이 결합하면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민 교수는 “쌀을 어떻게 줄일까가 아니라, 쌀을 어떻게 새롭게 쓸까가 핵심 교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쌀 산업의 해법은 ‘새로운 쓰임새를 만드는 것’”이라며 “품종부터 산업까지 전체 재설계를 담보하는 K-라이스 밸류체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조전환을 위한 쌀의 하이테크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공식품 ▷주류 ▷기능성 제품 ▷바이오·화장품 등 활용할 수 있는 산업 분야를 제시했다. 민 교수는 “이들 네 분야는 가공·수출·기술혁신이 결합해야 하는 영역인 만큼, 쌀 산업을 생산 중심에서 산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K-라이스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인 스타 쉐프인 고든 램지가 한국산 쌀로 만든 파스타를 전세계에 소개하도록 하는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라이스 위스키 같은 고부가가치 품목 육성해야=특히 민 교수는 “고부가가치이면서 글로벌 시장성이 큰 품목 중 하나가 ‘라이스 위스키(RICE WHISKY)’”라고 강조했다. 민 교수는 “한국산 단립종 쌀은 균일성과 순도가 높아 프리미엄 그레인 위스키 원료로서 강점이 있다”며 “미국 버번 위스키 시장이 2023년 60억7000만달러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쌀도 충분히 수출 산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국산 쌀을 기반으로 위스키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면서 “가공·수출·기술혁신이 결합된 K-라이스 산업이 농업의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라고 했다.
포럼을 공동주최한 김병원 한국생명과학기술연구원 회장은 “쌀 농가 소득을 위협하는 가격 변동성과 수급 불균형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며 “이번 포럼은 구조적 해법을 찾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최진영 헤럴드미디어그룹 대표 역시 “쌀은 우리의 역사·전통·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상징하는 작물이지만 기후 변화·소비 둔화·수급 불균형으로 위기에 놓여 있다”며 “전통적 접근을 넘어 새로운 해법을 찾을 때”라고 말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영상 축사에서 “쌀 가공산업 발전, 고품질 쌀 소비 확대, 해외시장 진출 강화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K-푸드 열풍은 쌀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할 큰 기회”라고 강조했다.
민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가공과 수출,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농민이 마음 놓고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며 “K-쌀을 활용한 새로운 산업을 발굴해낸 이에게 상을 주는 ‘RICE-TED(Try·Energy·Dream) 어워드(Award)’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날 장태평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강평을 통해 “농업 소득 정체, 쌀 소비 감소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민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며 “밥쌀용 쌀에서 산업용 식품재료로 쌀을 육성해보자는 것은 정확한 지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쌀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술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과학기술을 접목해 산업화, 규모화를 통해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고양=김용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