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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철학이 필요한 세계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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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캔버스에 유채, 129.5×196.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캔버스에 유채, 129.5×196.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지난 11월20일은 세계 철학의 날이었다. 이 기회를 빌려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소크라테스 이래 철학의 기능은 우리를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질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데 있다. 이러한 철학의 역할은 자유주의적 관용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더 큰 중요성을 지닌다. 이 세계에서는 지배 체제의 통제를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자유롭다고 착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괴테가 일찌감치 말했듯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노예만큼 절망적인 노예는 없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사회가 껍데기 언어 놀이를 일삼는 소피스트들에 의해 붕괴하던 시기에 등장했다. 소크라테스는 이들에 대해 거듭하여 질문을 던지는 급진적인 방식으로 대응했다. “도대체 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리의 정의는 무엇인가?”, “선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같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개념들에 대해 계속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산파술이 필요하다. 평등, 자유, 인권, 민중, 연대, 해방을 포함해 우리가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들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진정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생태 위기에 직면했을 때 단지 자연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자연이라는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함께 묻는 것이다. 또는 인공지능(AI)이 부상하는 시대에 “기계가 사고할 수 있는가?” 정도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공자의 ‘정명’ 사상과는 다른 방향에 있다. 공자는 “이름(언어)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말이 서지 않고, 말이 서지 않으면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와 악이 일어나지 않고, 예와 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정의가 통하지 않고, 정의가 통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며 언어와 그에 맞는 역할을 일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 전통은 이와 반대다. 그에게 진정한 사유는 언어 안에서 사유하되 언어를 거슬러 사유하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의 언어 자체에 새겨져 은폐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고 파괴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소피스트들은 존재한다.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플라톤의 ‘국가’ 첫 페이지에 나오는 귀를 막고 힘으로만 결정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힘없는 상대의 목소리는 아예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으며 사고를 거부한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라며 무시한다.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이들 역시 지구온난화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듣지 않고 기후변화 대응을 음모론으로 치부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유럽연합의 외교·안보 고위 대표에게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러시아가 패배할 경우 미국의 초점이 중국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중국은 평화가 중국의 경제적 이해에 타격을 주지 않도록 한 국가 전체를 파괴하고 있는 전쟁이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잔혹한 입장들은 소크라테스와의 논쟁에서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가 제시한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개념에 기반한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한 결론은 오늘날이야말로 철학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절실하다. 나이브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정의의 개념을 생존이라는 실용적 고려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재정립해야만 앞으로 생존할 수 있다. 오늘날 정의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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