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보' 스틸 컷 |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이 연출한 영화 '국보'가 역대 일본 실사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지난 24일까지 관객 1231만 명을 동원해 173억7000만엔(약 1633억원)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춤추는 대수사선 더 무비 2'가 2002년 세운 최고 기록(173억엔)을 22년 만에 갈아치웠다.
이례적인 흥행이다. 일본에서 실사영화의 인기는 애니메이션에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국보의 소재는 전통예술인 가부키다. 전통 소재는 관객층이 좁고 흥행 곡선도 짧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보는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초반 안정세를 유지한 뒤 장기 흥행에 성공했다.
전통예술을 현대적 감정선으로 풀어낸 덕이다. 가부키는 일본인조차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형식과 용어, 무대 장치 등이 적지 않은 사전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 영화는 전통예술을 다룰 때 다큐멘터리식 접근이나 전문적 해설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국보는 무대 기술이나 관습보다 인물의 감정, 갈등, 성장을 서사의 중심을 뒀다. 전통 형식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만 활용했다.
영화 '국보' 스틸 컷 |
영화는 가부키 세계에 뛰어든 이방인의 비애와 운명, 명문 가문의 후예가 짊어진 압박과 열망, 라이벌 간의 갈등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전통예술을 '문화유산'이 아닌 '살아있는 감정'으로 되살린 것이다. 관객이 가부키를 몰라도 서사에 몰입할 수 있다.
국보의 흥행에는 젊은 관객을 끌어들인 스타 시스템도 결정적이었다. 주연 배우 요시자와 료와 요코하마 류세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청춘 스타다. 촬영을 앞두고 가부키 배우에게 1년 넘게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이 과정이 홍보 콘텐츠로 활용됐다.
초기 관객의 상당수는 두 배우의 팬덤이었다. 하지만 관심은 단기 소비에 그치지 않았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통예술 관객층으로 확장됐고, 다시 일반 관객으로 번져 '3단계 확산 구조'가 만들어졌다. 개봉 2~3주차 관객 수가 전주 대비 증가하는 이례적인 흐름도 나타났다.
극장 경험의 차별성도 흥행을 떠받쳤다. 국보는 가부키 무대의 디자인과 색채, 의상 디테일, 조명과 그림자의 대비를 현대적 영화 언어로 재구성해 공연예술을 체험하는 듯한 감각을 제공한다. 이런 연출 방식은 대형 스크린과 생생한 음향을 갖춘 특수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 '국보' 스틸 컷 |
실제로 일본 대형관 체인 조사에 따르면 국보 관람객의 약 28%는 고화질 스크린이나 프리미엄 상영관을 선택했다. 최근 일본 실사영화 평균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가부키를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입문작'이라는 평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보는 개봉 6~7주차까지도 평일 관객 수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OTT 시대에 극장 영화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보여줬다. 전통예술을 다룬 영화도 시장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