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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복지 주변화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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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에서 ‘복지’가 점차 국정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가고 있다.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슬로건은 강력하나 실제 복지정책은 기존 수준을 넘지 않는다. 낮은 조세부담률에 세입정책도 소극적이어서, 이러면 대한민국이 중복지체제로 고착될 수 있다.

복지 주변화는 내년 예산안에서 나타난다. 정부가 발표했던 국정과제의 구체적 내용이 예산안에서 드러난 것이다. 우선 복지예산 총량에서 주변화 조짐이 보인다. 내년 정부총지출은 8.1% 증가하고, 이 중 복지 분야는 8.2% 늘어난다. 두 수치가 비슷하니 무난하다 생각할 수 있으나, 지난 10년(2017~2026) 총지출은 평균 6.9% 늘고, 복지는 평균 8.5% 증가했듯이 통상 복지 증가율은 정부총지출보다 높았다. 역대 예산 편성에서 다른 분야에 비해 무게를 두어왔던 복지가 이번엔 그러하지 못하다. 중기재정운용계획에 의하면, 앞으로 5년 복지 분야 지출 증가율은 평균 6.0%에 그친다. 이러한 예산 구조에서는 사회보험과 같은 의무지출을 제외하면 정부 의지가 반영되는 재량지출 증가율은 3.4% 정도로 낮아진다. 복지 주변화가 본격화된다는 의미이다.

핵심 사업들을 살펴보자. 정부는 복지 분야 예산안의 핵심 특징으로 “저소득층 빈곤 완화를 위한 생계·의료급여 등을 더욱 두껍게 지원”했다고 홍보한다. 생계급여에 적용되는 기준중위소득을 역대 최고 수준인 6.51% 인상하고, 의료급여에서 부양비를 폐지한 걸 가리킨다. 이 문구만 보면 빈곤 복지에 적극 대응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중요한 실체는 이면에 있다. 현재 80여개 복지사업의 선정에 사용되는 기준중위소득은 실제 소득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수립된 금액이다. 이는 실제 소득인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소득에 비해 낮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26년까지 기준중위소득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일치시키는 목표를 세웠으나 지금은 오히려 격차가 당시 12.5%보다 훨씬 커진 상태이다. 그런데도 이재명 정부는 2026년 목표연도에 이 격차를 놔둔 채 내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이 윤석열 정부의 6.42%보다 조금 높으니 ‘역대 최고’라고 자찬한다. 기준중위소득의 현실화 과제를 방치하면,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전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의료급여에서 부양비는 부양의무자 기준과 구분해 보아야 한다. 올해 의료급여 수급자는 154만명으로 생계급여 수급자 183만명에 비해 무려 29만명이 적다. 무엇보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의료급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폐지하는 건 ‘부양의무 미약’ 구간에 적용되는 간주부양비로서 약 5000명이 새로 수급권을 얻을 뿐이다. 내년에도 의료급여의 사각지대를 초래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그대로 남아 있다.

노인복지에서도 예산 확대는 더디다. 국정과제는 “노인일자리 지속 확대 제공, 매년 적정 단가 인상”을 명시했지만 내년에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 수당은 월 29만원 동결이다. 기초연금도 국정과제는 “저소득 노인의 기초연금 수령액을 합리적으로 인상”한다고 약속했으나 내년에 물가 2.0%만큼만 연동 인상된다. 국민연금에서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도 제한적이다. 올해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이 조항이 신설되고 소득 기준이 정부에 위임되었는데, 이재명 정부는 대상 적용 소득을 월 80만원으로 한정했다. 이는 현행 농어촌 가입자 보험료 지원에서 기준선인 103만원보다 낮은 금액이다. 국회는 동일한 지역가입자인 농어촌 보험료 지원 수준을 염두에 두고 조항을 만들지 않았을까.

의료돌봄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에서 국고지원이 보험료 수입의 20%에 미달하는 고질적인 문제에 대응한다며 국정과제에 ‘건강보험 재정 국고지원 확대’를 명시했다. 하지만 정작 내년 국고지원율은 14.2%로 올해 윤석열 정부의 14.4%보다도 낮다. 통합돌봄 예산안도 내년 ‘전국 시행’이라면서도 전체 지자체 중 80%에만 재정을 지원하고, 금액은 기초지자체당 평균 4억2000만원에 그친다. 시범사업 때보다 지자체당 지원액이 절반으로 줄었다.


국회 예산안 심의가 막바지로 가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보건복지위에서 건강보험 국고지원, 통합돌봄 예산, 저소득층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등이 증액되었는데, 본회의에서도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여기서 멈추어선 안 된다. 기본사회를 주창하는 정부에서 복지 주변화가 진행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 진짜 기본사회로 가려면 기존 복지체제를 넘어서도록 복지예산을 편성하고, 재원 확보를 위해 누진 증세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멈출 수는 없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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