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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청소년의 마지막 쉼터, 왜 사라져야 하나요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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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인근에 세워진 ‘서울시립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 상담 천막에 청소년들이 남긴 마지막 인사가 걸려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8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인근에 세워진 ‘서울시립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 상담 천막에 청소년들이 남긴 마지막 인사가 걸려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유예인 | 중앙대 간호학과 1학년





한겨레 11월17일치 기사 ‘여성 가출청소년들 버팀목이었는데…‘나무’ 이제 사라진대요’를 읽고 가출청소년 센터를 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청소년 시절, 부모님과 심하게 다툰 저는 갈 곳이 없어서 가출청소년 센터를 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들은 첫 말은 “부모에게 꼭 연락해야 입소할 수 있다”는 안내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당황스러움과 함께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가출하는 청소년의 원인 1위가 부모와의 갈등입니다.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고 벗어나고 싶어서 나온 아이들에게, 다시 그 부모에게 연락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모순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행정절차를 요구하지 않고 청소년을 보호하는 시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서울시립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이하 나무)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나무는 가출한 여성 청소년들에게 이름도 묻지 않고, 절차도 요구하지 않은 채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왔습니다. 서울에서 그런 식으로 즉각 지원이 가능한 공간은 나무가 사실상 유일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실적 저조”와 “기능 중복”을 이유로 나무의 운영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그 결정 속에, 정작 나무가 누구를 위한 공간이었는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출한 청소년들 다수는 가정 폭력, 정서적 방임, 갈등 등으로 인해 스스로 집을 나온 경우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 동의는 받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현 제도는 얼마나 모순적일까요. 아이들은 쉼터에 들어가기도 전에 상처받고 거절당하는 기분을 느낍니다. 실제로 일부 청소년은 부모의 학대가 증명되지 않으면 입소가 거절되거나, 부모의 동의를 얻기 전까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제도에 의해 두번 상처받고, 스스로를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밀어 넣게 됩니다.



나무는 그 과정 없이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거리 상담을 통해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고, 질문보다 경청을 선택했습니다. 누군가는 자해를 멈추었고, 누군가는 처음으로 ‘환영받는 존재’임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은 “여기가 정신과보다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나무는 단순히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일상적 대화를 나누고, 손편지를 쓰고, 인형을 만들며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일상이 쌓여서, 청소년들에게 ‘나도 괜찮은 존재구나’라는 감각을 되찾게 했습니다.



서울시는 “유사 기관과 기능이 겹친다”고 하지만, 나무가 해온 역할은 다릅니다. 약물 복용 이력이나 자해 경험 때문에 기존 쉼터에 들어갈 수 없던 아이들, 부모에게 알리기 싫어서 구조를 포기했던 아이들에게 나무는 틈새의 공간이자 마지막 버팀목이었습니다.



기사에서 “숫자는 적지만, 우리는 한명을 오래, 깊게 만났어요”라고 국현 활동가가 말한 것처럼 돌봄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입니다. 거리에서 자해를 멈춘 아이, 한끼 따뜻한 식사를 통해 삶을 이어간 아이, 낯선 어른을 처음 믿게 된 아이의 변화는 숫자로는 환산되지 않습니다. 복지는 효율이 아니라 존엄의 문제입니다.



쉼터도, 병원도, 학교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단 하나의 공간’을 없앤다는 것은, 결국 그들을 향한 구조의 문을 닫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행정 절차를 따지지 않고 그 아이가 기댈 수 있는 공간이 최소한 한곳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서울시가 청소년 정책의 효율성을 말하려면, 다양한 상황에 맞춘 ‘맞춤형 공간’을 더 만들어야 합니다. 나무 같은 모델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시켜야 할 대상입니다. 지금 사라져야 할 것은 그 공간이 아니라, 고통을 숫자로만 판단하는 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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