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 미국보다 정체의 유럽 닮은 한국
창조적 파괴에서 더욱 중요한 정부 역할
'좋은 파괴'를 두려워 않는 용기가 필요
창조적 파괴에서 더욱 중요한 정부 역할
'좋은 파괴'를 두려워 않는 용기가 필요
그래픽=변한나·챗GPT |
2025년 노벨 경제학상은 '혁신 주도 성장' 연구의 대가인 조엘 모키어, 필리프 아기옹, 피터 하위트에게 돌아갔다. 이들의 연구는 경제 성장의 근본 원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아기옹과 하위트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현대 경제학의 중심 개념으로 재정립했다. 이들에 따르면 경제 성장은 단순히 생산요소를 더 투입하는 과정이 아니며, 새로운 혁신(창조)이 기존의 낡은 기술·기업을 계속해서 대체하는(파괴) 역동적 순환 그 자체가 성장이다. 파괴의 고통 없이 새로운 창조도, 지속적 성장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이 이론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비교를 제시하였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유럽은 일자리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며 기존 경제구조 보호에 집중한 반면, 미국은 실업 증가를 용인하는 대신 가계에 직접 현금을 지원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쇠퇴 산업에서 성장 산업으로 노동력이 빠르게 이동하며 '창조적 파괴'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2019년 이후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약 10% 증가하였으나, 유럽은 2% 증가에 그쳤다. 파괴를 허용한 미국이 창조의 과실을 독차지한 셈이다.
그렇다면 2025년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역동적인 미국보다는 정체된 유럽의 흐름에 더 가깝다. 역대 경제 수장들이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해왔지만, 강한 기존 세력의 저항 앞에서 정부는 인기 없는 개혁을 번번이 미뤄왔다. 경직된 규제와 노동시장은 혁신을 가로막았고, 한국 경제 곳곳에서 보호라는 명분 아래 퇴출되지 않은 이른바 '좀비' 기업들이 누적되고 있다. 그 결과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 내외에서 2010년대 3%대 초·중반, 2016~2020년 2% 중반으로 하락한 데 이어 현재는 2%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국 사회는 지금 ‘나쁜 안정’에 중독되어 있다. 파괴가 두려워 좀비 기업을 연명시키고, 갈등이 두려워 신산업의 싹을 자른다. 그러나 파괴를 회피하면 혁신은 불가능하고,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유럽식 ‘안정적인 쇠퇴’뿐이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어야 한다.
창조적 파괴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부 역할이 결정적이다. 첫째, 기존 세력의 저항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풀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구산업 종사자들에게는 합리적 퇴로를 제공하되, 신산업에는 과감하게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 이와 관련, 호주의 우버(Uber) 도입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소비자도 대타협 주체로 참여시켜 일부 보상 비용을 분담하도록 함으로써 기존 세력·신산업·소비자의 균형 있는 타협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둘째, 든든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수적이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환경에서는 기존 세력이 구조개혁을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고, 저항은 극렬해진다. 파괴 이후의 삶을 지탱할 안전망이 있어야 타협이 가능하고, 창조적 파괴가 경제 전반에 작동할 수 있다.
다행히 현 정부는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핵심 분야에서 구조개혁의 강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끈질긴 실행력이다. 경제 회복의 불씨가 켜진 지금이 구조개혁의 적기이며,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한국 경제가 다시 역동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좋은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윤참나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