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진 강북삼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왼쪽)와 폰히펠-린다우 증후군(VHL) 치료를 받고 있는 환우의 보호자인 정미경 씨, 김병도 환우가 손을 쥐고 희망을 응원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
평생 최대 10개의 신체 기관에서 양성 또는 악성 종양이 발생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종양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환자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지난해 VHL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를 요청하는 국민청원이 5만 명의 동의를 얻으며 큰 화제를 모았지만 아직까지 급여가 적용되지는 않고 있다. 김어진 강북삼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와 폰히펠-린다우 증후군 치료를 받고 있는 김병도 환우, 다른 환우의 보호자인 정미경 씨를 만났다.
―국내 VHL 환자 수는 얼마나 되나.
김어진 교수=“국내 VHL 환우는 약 2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요즘에는 유전자 검사가 보편화되면서 건강검진 등을 통해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VHL의 진단 과정과 현재 상태는….
김병도 환우=“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어지럼증이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았고 5㎝ 이상의 뇌종양과 물혹이 발견됐다. 이후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하면서 부신암, 신장암, 척수 내 종양이 추가로 발견됐다. 부신암과 뇌종양은 수술로 제거했고 척수 내 종양은 양성으로 확인돼 별도 치료 없이 추적 관찰 중이다. 신장암은 악성으로 확인됐으나 수술 이후에는 평생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약물 치료를 먼저 받고 있다.”
―항암 치료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나.
김 환우=“처음 항암치료를 할 때는 열이 많이 났는데 현재는 많이 적응돼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치료 과정에서 생긴 머리 뒤와 배에 큰 수술 자국이 생겨 조금 위축된 상태로 살아왔던 것 같다. 최근엔 마음을 고쳐먹고 당당하게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좋은 약을 쓸 수 있으면 좋겠고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VHL 치료는 한 가지 약으로 모든 종양을 치료하나.
김 교수=“VHL 환자들은 전신에 있는 모든 세포가 암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과도 같다. 이 종양을 치료하면 저기에서 종양이 생기고, 저 종양을 치료하면 또 다른 장기에 종양이 생긴다. 근본적으로 돌연변이를 타깃하는 표적치료제만이 근본적인 치료 방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임상 연구에서 중추신경계와 망막 혈관모세포종, 췌장 신경내분비종양, 신장암을 가진 VHL 환자들에게 웰리렉(성분명 벨주티판)이라는 약물을 투여했을 때 종양에 대해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확인했다. 특히 췌장 신경내분비종양에서는 반응률이 90% 이상이었다. 여러 종양이 있어도 동시에 치료가 가능하다는 근거를 확인했다.”
―현재 웰리렉으로 치료를 받고 있나.
정미경 환우 보호자=“딸은 웰리렉을 사용하고자 하는 희망으로 3상 임상에 참여했으나 대조군으로 배정돼 현재는 다른 약제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3주에 한 번 혈액종양내과를 방문해 임상약을 받는다.”
김 환우=“치료비 부담 때문에 웰리렉이 아닌 다른 약제로 치료하고 있다.”
―VHL 치료제가 국내 들어와 있지만 상당수 환자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웰리렉은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고 2023년 국내에 허가됐다. 그러나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한 달 치료 비용이 2000만 원이 넘는다. 한번 치료를 시작하면 효과가 없거나 견딜 수 없는 부작용이 발생할 때까지 계속 투약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로 치료를 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보험급여화를 위해 두 차례 암질환심의위원회에 상정됐지만 급여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세 번째 시도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치료제의 급여화와 관련해 지난해 국민청원에서 5만 명이 동의했다.
정 환우 보호자=“지난해 6월 국민청원에서 나타난 성원으로 보건복지부 국민청원소위원회에 회부됐으나 같은 해 11월과 12월, 올해 3월과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심사를 연장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 22대 국회에서는 국민청원 소위원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계류 중이다.”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다면….
정 환우 보호자=“척수에 종양이 있는 환자 분이 웰리렉 치료를 받은 뒤 저림 증상이 완화되고 종양 사이즈도 줄었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부위에 종양을 갖고 살아간다. 웰리렉은 VHL 환자에게 무한히 반복되는 외과적 수술을 막을 수 있고 종양의 크기가 줄거나 없어진다는 검사 결과지에 객관적인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다. 단지 가격이 개인이 부담하기엔 너무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해도 약제 급여 평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약가 협상 등 긴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터널의 끝에는 빛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부디 경제적인 논리로만 접근하지 말고 수술 후 되돌릴 수 없는 신체 후유증으로 살아갈 환우의 몸과 마음을 고려해 평가하길 바란다.”
김 환우=“VHL을 앓기 전에는 스스로에게도 낯선 질환이었기 때문에 진단까지 과정이 길었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많은 도움과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급여화도 잘 진행돼 좋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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