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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오후 4시 20분쯤 전북 전주시 덕진구의 한 아파트. A(59)씨는 집 거실에서 평소 호형호제하던 B(53)씨와 낮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잔이 오가던 중 대화 주제가 C씨로 흐르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B씨가 무심코 던진 C씨 이야기는 A씨의 심기를 건드렸다. C씨는 A씨의 이웃인데, 지난 2024년 12월 A씨가 C씨 집에서 술 주정을 부리다 퇴거 불응죄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순간 격분한 A씨가 “C씨 때문에 벌금 50만원이 나왔으니 그 XX 얘기하지 마라. 그렇잖아도 이가 썩어 틀니 때문에 돈이 들어가는데. 죽어버려야겠다. 나랑 같이 죽자”며 고함을 질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A씨는 싱크대로 달려가 과도(20㎝)와 식칼(32㎝)을 양손에 쥐고 돌아왔다. 이어 B씨의 오른쪽 허벅지를 과도로 찔렀다. 겁에 질린 B씨가 “형, 나 진짜 죽이려고 그래”라고 하자, A씨는 “넌 진짜 죽어야 돼”라고 답했다.
A씨는 곧장 식칼로 B씨의 목과 눈썹 부위를 찔렀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면서 거실과 주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B씨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칼을 빼앗아 싱크대에 던진 뒤, 피를 철철 흘리며 현장을 빠져나갔다.
B씨는 다리를 절뚝이며 A씨 집에서 200m쯤 떨어진 누나의 반찬 가게까지 뛰어가 구조를 요청했다. 피범벅이 된 동생을 본 누나와 매형은 경악했다. B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A씨를 범인으로 명확히 지목했고, 그의 집 동·호수까지 알렸다.
경찰이 들이닥친 A씨의 집은 참혹했다. 거실장, 냉장고, 싱크대 곳곳에 피가 튀어 있었다. 바닥에는 B씨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던 피 묻은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B씨는 다음 날 병원 중환자실에서 깨어나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A씨가 술에 취해 아무런 이유 없이 싱크대 서랍에서 과도와 식칼을 꺼내 죽여버리겠다며 칼을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A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범행 자체를 부인했다. 그는 “B가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을 찌르려던 걸 말리다 내 손만 다쳤다”고 진술했다. 심지어 “말린 뒤 피곤해서 잤는데 깨보니 B가 없었다”는 황당한 주장도 했다.
하지만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A씨가 입고 있던 옷과 양손, 양발에서 모두 B씨의 DNA와 혈흔이 검출됐다.
무엇보다 현장에 남은 혈흔 패턴이 결정적이었다.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 가격당할 때 생성되는 ‘충격 비산 혈흔’과 피 묻은 칼을 휘두를 때 생기는 ‘휘두름 이탈 혈흔’은 자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명백한 공격의 증거였다. 흉기가 피해자의 신체나 바닥·벽 등에 강하게 부딪혀 정지할 때 흉기에 묻어 있던 피가 진행 방향으로 쏠리며 튀어 나가는 ‘정지이탈 혈흔’까지 발견됐다.
재판부는 A씨와 B씨의 진술이 엇갈렸지만 과학 수사를 근거로 A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전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상곤)는 살인 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과수의 감정서에 따르면 현장에서 필사적으로 움직였거나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있다”면서 “이러한 사정을 종합해볼 때 피고인이 피해자의 자해를 말리면서 현장에 혈흔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피고인의)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의 범죄 전력도 도마에 올랐다. 그는 불과 4년 전인 2021년에도 부엌칼로 사람을 다치게 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전력이 있었다.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흉기를 든 것이다.
재판부는 “벌금과 틀니 비용 등 경제적 이유로 홧김에 친한 이웃을 살해하려 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피해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게 됐음에도 피고인은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전주=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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