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와 관련해 일선 검사장들이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항소 포기 지시 경위·근거’ 등에 대해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낸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로비에 직원들이 있다. 연합뉴스 |
김태규 | 사회부장
“이재명은 대통령이 되면 잘할 거야.”
대통령 탄핵 선고일이 확정되며 조기 대선이 비로소 가시권에 들어왔던 지난 4월1일, 정부 고위직 출신 법조인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이 직접 뽑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한껏 기대를 받으며 취임하지만, 임기 말엔 국정 실패의 책임을 지라는 매서운 지탄을 받으며 퇴임하는 일이 반복됐다. 1987년 이후 직선제로 선출되고도 2명의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고 4명은 감옥에 갔다. 권력의 크기만큼 책임도 무거운 대통령은 어찌 보면 ‘공직자의 무덤’과 같은 자리다. 역사가 이러한데 아직 대통령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섣부른 확신’이라니…. “지금 재판 진행 중인 게 5건이잖아.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판이 중지될 거고, 퇴임 뒤에나 재개돼. 그런데 대통령 일을 잘 못하면 그것도 퇴임 뒤 판결에 영향을 주지. 그러니 대통령을 잘할 수밖에 없어.” ‘윤석열 검찰’의 가혹한 수사로 2022년 대선 패배 이후에 고초를 겪고 법정에 서게 됐는데, 그러한 불안정한 상황이 되레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는 강력한 동기가 될 거라는 분석이었다.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3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더 이상 정쟁의 중심에 끌어들이지 말”라며 여당이 추진하겠다던 ‘대통령 재판중지법’에 제동을 걸고 나선 건 상징적이었다. 이 대통령 재판이 재개될 수 있다며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불안감을 나타내든, 강성 지지층이 뭐라 요구하든 이 대통령이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대통령 직무에 충실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혔다.
그러나 ‘피고인 프레임’에서 멀어지려던 이 대통령 ‘마이웨이 선언’의 지속 기간은 딱 4일이었다. 지난 7일 검찰은 대장동 개발 비리 5인방 1심 사건의 항소를 포기했고,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이라고 하면서도, 무죄 부분도 있고 추징금도 확 줄어든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이례적인 결정이 “법무부의 의견”에서 비롯됐음을 시사했다. 설령 법무부가 항소 포기를 요구했어도 검찰총장 직무를 대행하는 사람은 “항소 포기는 너무 이례적인 일입니다. 더구나 대통령 관련 사건이어서 뒷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항소 포기가 옳다고 판단한다면 장관님이 수사지휘권을 쓰십시오”라고 했어야 맞는다. 총장 대행이 그런 식으로 ‘현명하게’ 대처했다면 법무부 장관도 멈칫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의 표명 뒤 집으로 찾아간 기자들에게 ‘마음이 부대꼈다’고 했던 노 전 대행은 사실상 법무부의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이 어떻게 저항했는지는 설명이 없다.
이상한 항소 포기 이후 대장동 사건 보도에는 다시 불이 붙었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인한 성남시의 피해액이 정확히 얼마인지, 형사가 아닌 민사소송으로 피해액 환수가 가능한지, 재판이 중지된 이 대통령의 대장동 사건 재판에 검찰의 항소 포기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이진수 차관이 노 전 대행을 압박한 게 아닌지, 이번 사안 외에도 이재명 정부가 검찰을 압박한 사례가 또 있었는지 등등이었다. 노 전 대행이 지난 14일 퇴임식까지 열고 물색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검찰청을 떠나고 후임자가 지명되면서 검찰 내부 동요가 진정되는가 싶더니, 정부·여당에서는 항소 포기 경위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던 검사장 18명을 평검사로 강등시키거나 형사처벌하겠다는 ‘뉴스’를 또 내놨다.
모두 이재명 대통령을 ‘피고인 이재명’으로 각인시키는 일들이다. 추가 논란도 예정돼 있다. 이 대통령과 함께 대장동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1심 선고가 나온 뒤에는 어떻게 될까? 항소 포기를 위해 장관이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할까? 초미의 관심사다.
이 대통령을 피고인으로 거듭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 사건은 이제 겨우 출범 5개월이 지난 이재명 정권의 거대한 실책이다. 대통령실은 “우리가 왜 굳이 이 재판에 껴서 사달을 만드나. 대통령실 기획이 아니다”(우상호 정무수석)라며 손사래를 치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신중히 판단하라고만 했다”고 주장한다. 큰 사고를 치고도 누구의 책임인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게 더 위험한 신호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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