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사진 NSI 제공 |
국가 간 교류와 영향력이 증가하는 현대 사회는 문화, 경제, 환경, 인권 문제 등이 전세계적으로 연결돼 있다. 기후위기, 자원고갈, 환경오염, 인권 등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해 국제적 협력과 대응이 필수적이며, 각 나라의 다양한 제도·법률·문화·언어·종교·식습관 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도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재단법인 NSI(New Society Institute)가 미래세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글로컬시티즌십 함양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반장식 NSI 원장은 “미국의 경우 청소년 대상 교육에서 경제교육, 법치교육이 두 축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경제교육이 보편화된 반면 법치교육은 미미한 실정”이라며 “NSI가 2025년부터 ‘청소년 법마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유”라며, 학교와 기업의 많은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청소년 눈높이 맞춘 ‘법마음 교육’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 법마음 교육’은 타인에 대한 존중, 사회,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며, 법을 알고, 신뢰하고, 행동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법의 존재 이유와 제정 과정을 이해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주변의 법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학생 스스로 필요한 법을 만들어 제안하도록 프로그램이 구성돼 있다.
실제 제주도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진행된 ‘법마음 교육’ 현장. ‘법마을 탐험대’라는 이름의 특별한 수업이 열린 날, 교탁 앞에 선 교사가 학생들에게 “법이 왜 필요할까요?”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 서로 눈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날 즈음, 한 학생이 말했다. “법이 있으니까 학교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군요.” 그러자, 또 다른 학생이 이어서 말했다. “법이 없으면 내 권리를 지킬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현실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서 규칙이 주어졌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비교해 토론하고 그림 그리기를 통해 표현한 결과다. 이날 수업에서는 급식실과 화장실 등에서 줄을 서야 하는 이유, 줄을 서지 않았을 때 일어날 일 등에 대해 토론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활동을 했다.
이날 교육에 참여한 학생들 역시 한목소리로 “법을 만드는 역할극을 하면서, 법을 만들고 지키는 일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임을 알았다” “타인과 갈등을 해결하고,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등의 소감을 전했다.
이렇듯 ‘청소년 법마음 교육’은 법을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청소년 스스로의 삶과 밀접히 연결된 생활의 언어로 풀어낸다. 그 결과 교육 이후 법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 교사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교사들은 “친구의 물건이나 의견을 존중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향상됐다”거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게 여기는 학생들이 늘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생활 속에서 ‘숨은 법’을 찾다
‘법마음 교육’은 법의 의미와 필요성,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돕는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은 총 1부와 2부로 나눠 총 4차시로 구성된다. 1부 수업 첫 시간에는 ‘우리 생활 속에 법이 숨어 있어요’를 주제로 영상과 카드놀이를 통해 법을 찾아본다.
세부적으로 교육기본법, 도로교통법, 학교폭력예방법, 학교급식법 같은 실제 법률 조항을 토대로 게임을 진행한다. “신호등 없는 어린이 보호구역 내 횡단보도 앞에서는 보행자 횡단 여부와 관계 없이 차량이 일시정지 해야 한다”(도로교통법), “단체 채팅방에서의 조롱, 댓글을 통한 모욕, 사진이나 영상 유포 등이 학교폭력이 될 수 있다”(학교폭력예방법), “학교급식을 위한 시설과 설비를 갖춘 학교는 영양교사와 조리사를 두어야 한다”(학교급식법) 등의 예문들이 게임 속 카드에 등장하자 학생들은 “아! 이게 다 법이구나”라고 놀라워하며,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계의 특이한 법’ 퀴즈에서는 본래 여러 마리가 함께 생활하는 동물인 금붕어를 한 마리만 키우면 동물학대가 되기 때문에 ‘금붕어를 한 마리만 키워서는 안 되는’ 스위스 법률, 미식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측면에서 ‘어릴 때부터 미각을 발달시키도록 초등학교에서 케첩을 금지’하는 프랑스 법률, 아무곳에서나 껌을 씹고 뱉으면 거리가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이를 막는 싱가포르의 ‘껌 금지법’ 같은 독특한 사례를 문제를 풀며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법이 그 나라 문화와 생활을 지키기 위한 장치”라는 사실과 함께, 타인에 대한 존중, 공동체의 중요성 등을 배운다.
‘법마을 놀이’로 배우는 권리와 책임
‘법마음 교육’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2부 ‘법마을 놀이’다. 교실이 작은 마을로 변신하는데, 학생들은 미용사, 경찰관, 직장인, 국회의원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 실제로 사건에 대응하는 훈련을 한다. 횡단보도에서의 교통사고, 사이버폭력, 해킹 사고 같은 상황이 주어지면 국회의원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모여 새로운 법률을 제정한다.
“과속 때문에 사고가 났으니 주택가 도로의 제한속도를 낮춰야 해요.”
“사이버폭력을 막으려면 온라인에서도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법에 써야 해요.”
“딥페이크나 이상한 앱을 만드는 사람은 처벌받아야 해요.”
학생들은 토론 끝에 교실 칠판에 직접 ‘법’을 적어내려갔다. 역할극을 통해 나와 이웃의 권리를 지키는 법의 기능을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수업 마지막에는 ‘좋·아·바(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바라는 점)’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지는데, 한 학생은 “법은 경찰관만 지키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청소년 법마음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횡단보도에서의 교통사고, 사이버폭력, 해킹 사고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해결방안들을 토론한 뒤 직접 관련 법률을 만드는 체험을 한다. NSI 제공 |
교사들이 전한 참여 후기 ‘긍정적’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수업에 참여한 교사들의 평가 역시 긍정적이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평소 접하는 게임, 교통, 학교생활을 사례로 하다 보니 집중도가 높았다”며 “법을 강의로 배우는 게 아니라 놀이와 토론으로 경험하면서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교사는 “‘법마을 놀이’에서 학생들이 국회의원 역할을 맡아 법을 만드는 장면이 특히 의미 있었다”며 “법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위해 우리가 직접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약속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체감한 것이 큰 수확”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교사는 “법마음 교육 후 학생들이 교실 게시판에 ‘법이란 내 친구를 지켜주는 울타리’라는 문구를 적어놔 깜짝 놀랐다”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이 법치주의와 더불어 나의 권리와 책임, 의무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태도를 배운 값진 시간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공동체를 지키는 ‘법마음’ 중요성
2025년 한 해 동안 전국의 초등학생 5000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내년에는 교육 대상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강희찬 미래교육센터장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법은 청소년들에게 낯설고 멀게 느껴질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NSI의 ‘법마음 교육’은 법을 현실의 문제 해결 도구로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공동체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법마음 교육’이 특별한 이유는 생활 속 규칙을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가 되는 법치주의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갈등과 분열을 넘어 다양성과 상호존중, 그리고 협력의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길러준다.
박상래 NSI 책임은 “법마음 교육 프로그램은 단순한 법 교육을 넘어 민주시민 교육의 실험장”이라며 “청소년들이 민주사회의 주인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균형 있게 이해하는 미래 사회의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함께 더 잘 살기 위해 법이 필요함을 알려주세요”
강희찬 NSI 미래교육센터장 인터뷰
재단법인 NSI는 2023년부터 공동체의식을 갖춘 미래세대 양성을 핵심 비전과 사명으로 정하고 청소년 법마음 교육, 대학생 공공인재 스쿨, 청년 국가재정 마스터 사업 등 미래세대 교육을 중점사업으로 펼치고 있다.
강희찬 미래교육센터장은 “대한민국 공동체를 지탱하는 세 가지 축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이지만, 그중 법치주의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해와 실천이 부족해 공동체의식 약화, 사회적 갈등 심화 등 사회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며 “이에 ‘청소년 법마음 교육’을 2025년부터 공식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희찬 미래교육센터장과의 일문일답.
–우리 사회에서 법치주의 교육이 왜 필요한가.
“법치주의 교육은 글로컬 시민의 핵심 역량이다. 법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능력은 지구촌이 직면한 정의, 인권, 평등, 환경과 같은 보편적 글로벌 이슈를 지역사회에서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다.”
–NSI가 청소년 법마음 교육을 중시하는 이유는.
“법은 단순히 위반 시 처벌받는 강제적인 규율이 아니다. 법치주의는 정의와 공정성을 바탕으로 모두가 예측 가능하게 행동하고,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며, 궁극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국가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안전장치다. 미래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협력하며,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의 정의, 역할, 가치를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법마음'을 갖춰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경험한 청소년들의 법치주의 의식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 초등학생을 포함한 우리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개인의 권리에 민감하다. 하지만, 법을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한 합의와 절차'의 관점에서 이해하기보다는 ‘나에게만 유리하거나 불리한 규율' 또는 ‘정의롭지 않은 어른들이 만든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NSI의 ‘법마음 교육'은 직접 법을 만드는 체험을 통해 법이 ‘우리 모두의 필요와 합의’에 의해 시작됐음을 알려주고 있다.”
–법마음 교육을 하면서 느낀 보람이 있다면.
“가장 큰 보람은 아이들이 ‘법은 재미없고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숨은 법 카드놀이'나 ‘법 만들기 역할극'과 같은 체험 활동을 하면서 즐기는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렇다.”
–법마음 교육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소개해달라.
“한국경제인협회 후원으로 진행된 올해 사업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전국 교육청의 협조로 2025년 115개 학교, 200개 학급 5000명의 초등학생들을 교육했다. 내년에는 교육대상을 전국 300개 학급 이상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법치주의의 심화된 가치인 경청, 협의, 갈등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개발한 ‘외계 협상왕을 찾아라'도 교육 현장에 적용할 계획이다.”
–청소년들의 법치주의 함양을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솔선수범이 필요해 보인다.
“일상 속에서 신호 준수, 공공장소 예절 등 사소한 규칙이나 약속도 존중하고 실천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가정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법치주의 교육현장으로, 가족 회의 통해 청소, 용돈, 취침 시간 등 가족 규칙을 제정할 수 있겠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를 대할 때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일방적인 지시 대신 ‘왜' 그 규칙이 필요한지 대화하고, 아이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 자체가 민주적인 법치주의 교육이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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