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작년 9월 수중에서 핵미사일 발사가 가능하다며 공개한 첫 전술핵 공격잠수함. 북한이 원잠을 보유하려는 것은 지상 핵 기지가 모두 파괴된 후에도 생존 가능한 핵 반격용 수중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연합뉴스 |
대한민국은 지금 때아닌 원자력 추진 잠수함(원잠) 보유국의 꿈에 들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력 수요를 감당할 원자력발전소 건설에는 인색한 나라에서 잠수함의 동력원(動力源)으로 디젤엔진 대신 소형 원전을 사용하는 데는 환호하는 국민이 많다.
그런데 정부의 원잠 획득 구상이 실현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10월 29일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원잠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원잠에 사용할 핵연료 공급을 미국에 요청했다. 원잠 건조는 한국에서 할 테니 농축우라늄 연료만 공급해 달라는 취지였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소셜미디어에 미국의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원잠을 건조해 한국에 제공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14일 발표한 ‘조인트 팩트 시트’에서는 한국의 원잠 건조를 ‘승인(approval)’하면서 “연료 조달 방안 등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핵연료 공급 약속은 교묘히 피하면서 원잠 사업을 협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린 것이다. 트럼프가 분명한 약속을 할 수 없는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 원잠이나 핵연료를 이전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 재량으로는 불가능하고 미국 원자력법(AEA) 예외를 규정하는 의회의 별도 입법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의회를 설득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만, 내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기면 의회의 협조를 얻기는 더 어려워진다.
결국 한국이 원잠을 보유하려면 미국에 연료 공급을 의존하겠다는 발상을 버리고 자체 우라늄농축 능력을 갖춰야 한다. 원잠에 장착할 소형 원자로를 개발해 안전성 인증까지 받는 데 어차피 10년 이상 걸린다면 그 기간에 농축 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 현행 한미원자력협력협정 11조 2항에는 미국산 우라늄이나 장비를 사용하여 농축할 경우에만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게 돼 있다. 농축 능력을 개발하는 데 미국에 신세 질 생각을 버리면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원잠이 꼭 필요한지는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원잠의 장점은 멀리 가고, 빨리 가고, 잠항(潛航) 지속 시간이 긴 데 있다. 미국이 재래식 잠수함은 한척도 없이 원잠만 71척 보유(미해군 보고서)한 것도 작전해역이 넓고 멀기 때문이다. 한국 해군이 남중국해나 대만해협에서 미국의 작전에 동참하려면 디젤 잠수함보다는 원잠이 유리하다. 그러나 북한 잠수함 기지 인근 해역에 도달하는 데는 재래식 잠수함으로도 하루밖에 걸리지 않으므로 속도가 결정적 장점이 될 수 없다.
북한이 원잠을 보유하려는 것은 지상 핵 기지가 모두 파괴된 후에도 생존 가능한 핵 반격용 수중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런 소중한 전략 자산을 가장 안전하게 숨겨둘 수 있는 곳은 한미 양국의 잠수함이 진입하기 어려운 내해나 수심이 얕은 연안이다. 수심 100m 이하 연안에서는 길이 100m 이상인 한국 원잠이 기동하는 데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북한 잠수함이 사거리 2000㎞ 이상의 북극성 계열 탄도미사일(SLBM)을 저수심 연안에서 더 안전하게 발사할 수 있는데 굳이 한미 양국의 잠수함에 탐지당하기 쉬운 깊은 외해로 나올 이유가 없다. 북한 핵잠수함이 대양으로 나오는 우를 범하지 않으면 한국 원잠은 제값을 하기 어렵다. 차라리 원잠 건조 예산으로 북한 잠수함을 연안에서 밀착 감시하는 데 용이한 소형 디젤 잠수함과 무인 잠수정을 촘촘하게 배치하는 것이 실효적일 수 있다.
해군은 원잠의 효용을 과대 포장하고 재래식 잠수함의 잠항 능력을 폄하하고 있으나, 최신 배터리 기술을 활용하고 배터리 용량을 확대하면 디젤 잠수함의 잠항 지속 기간을 한 달 이상으로 늘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3주마다 임무 교대가 가능한 거리에서 잠항 지속 시간을 몇 달 늘리는 것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나? 한국보다 작전 해역이 10배 이상 넓은 캐나다는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서 왜 원잠 대신 한국의 디젤 잠수함에 눈독을 들이겠나. 3주마다 교대하는 재래식 잠수함의 승조원들도 이직률이 이미 우려할 수준이다. 원잠에서 2~3개월씩 잠항에 시달릴 인력의 이직을 막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원잠 획득은 효용에 대한 맹신이나 과대망상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라 비용 대비 효과를 철저히 분석한 후에 결정할 일이다. 전력 증강 예산은 전작권 전환 조건 충족에 투자하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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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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