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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16년간의 고립 깨고 외교관계 수립 [김정한의 역사&오늘]

뉴스1 김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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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11월 16일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왼쪽)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 (출처: 12th Army Air Force Signal Corp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왼쪽)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 (출처: 12th Army Air Force Signal Corp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33년 11월 16일, 미국과 소련이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16년간 지속된 양국 간의 단절과 불인정 시대가 마침표를 찍었다.

미국은 그동안 소련의 공산주의 이념과 국제적인 혁명 선동 활동, 그리고 차르 시대 러시아 제국의 부채 문제 등을 이유로 소련 정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1930년대 초반,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과 유럽 및 아시아에서의 전체주의 세력(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팽창이라는 이중의 위협은 양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소련이라는 거대한 시장과의 무역 확대를 통해 국내 경제 위기를 타개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소련 역시 서방의 기술과 자본이 절실했으며, 독일과 일본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할 잠재적인 동맹국이 필요했다. 공동의 적에 대한 위협 인식이 이념적 장벽을 넘어서게 한 핵심 동인이었다.

양측은 외교 관계 수립에 앞서 난항을 겪었던 주요 쟁점들에 대해 잠정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가장 큰 쟁점이었던 러시아 제국의 옛 채무 상환 문제는 당장의 해결을 보류하고 추후 협상을 통해 논의하기로 했다. 대신 미국은 소련으로부터 중요한 안보 보장을 얻어냈다. 소련은 미국 내에서 미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어떤 단체나 활동도 지원하지 않으며, 그러한 활동을 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는 약속을 했다.

이 합의는 이념을 초월한 실리 외교의 승리로 평가되며, 격변하는 세계 정세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단기적으로는 독일과 일본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서 양국의 잠재적 협력 가능성을 열어줬다. 장기적으로는 이념 대결이 아닌 국가 간 세력 균형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축을 형성했다.

비록 훗날 양국 관계는 냉전이라는 극한의 대결 시대로 치닫게 되지만, 이날의 외교 관계 수립은 세계 정치사에 중요한 분수령으로 남았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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