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숙영의 시선]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지역의 여성학자'
우리나라가 '30-50 클럽'에 7번째로 가입한 지도 어느새 6년이 흘렀다. 이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과 인구 5,000만 명 이상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국가를 뜻하며, 공인된 클럽이나 물리적 실체가 있는 조직은 아니다. 하지만 이른바 '선진국 진입'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 한국이 2019년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며 7번째로 가입해 당시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에 걸맞은 성평등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올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세계성격차지수에서 한국이 0.687점으로 148개국 가운데 101위를 기록하며 성평등 부문의 진전이 가장 느린 국가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역시 한 예시다.
그래서 존폐 위기에 놓였던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되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딘 것은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평등의 진전을 위해서는 이를 이론적이고 실천적으로 견인해낼 수 있는 여성주의 지식의 생산과 공유 및 확산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제도 교육을 통한 젠더 전문가에 관한 훈련과 양성이 시급하다. 제도 교육 밖에서는 여성주의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며 '여성주의 독학자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과 달리, 정작 제도 교육 안에서는 이런 관심을 충분히 담아낼 만큼의 인력과 재정이 언제나 부족했고 이제는 더 큰 어려움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부장적 지식에 균열을 내고 모든 사람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하려는 여성주의 지식은 어디서 어떻게 생산돼 공유되고 있는가? 성 불평등의 현실에 관해 연구하고 대안을 찾는 제도권 여성학 교육의 오늘날 현실은 어떤가?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지역의 여성학자'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합니다.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뉴시스 |
우리나라가 '30-50 클럽'에 7번째로 가입한 지도 어느새 6년이 흘렀다. 이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과 인구 5,000만 명 이상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국가를 뜻하며, 공인된 클럽이나 물리적 실체가 있는 조직은 아니다. 하지만 이른바 '선진국 진입'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 한국이 2019년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며 7번째로 가입해 당시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여성주의 지식의 생산과 공유의 필요성
그런데 이에 걸맞은 성평등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올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세계성격차지수에서 한국이 0.687점으로 148개국 가운데 101위를 기록하며 성평등 부문의 진전이 가장 느린 국가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역시 한 예시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지난달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성평등가족부 현판식에서 정구창 차관 등 내빈들과 제막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래서 존폐 위기에 놓였던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되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딘 것은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평등의 진전을 위해서는 이를 이론적이고 실천적으로 견인해낼 수 있는 여성주의 지식의 생산과 공유 및 확산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제도 교육을 통한 젠더 전문가에 관한 훈련과 양성이 시급하다. 제도 교육 밖에서는 여성주의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며 '여성주의 독학자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과 달리, 정작 제도 교육 안에서는 이런 관심을 충분히 담아낼 만큼의 인력과 재정이 언제나 부족했고 이제는 더 큰 어려움에 처했기 때문이다.
'희망의 기획'으로서의 로컬여성학을 향해
계명대학교 여성학과 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 회원 20여 명이 5월 8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 성서캠퍼스 본관 앞에서 일반대학원 여성학과 신설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구=김재현 기자 |
그렇다면 가부장적 지식에 균열을 내고 모든 사람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하려는 여성주의 지식은 어디서 어떻게 생산돼 공유되고 있는가? 성 불평등의 현실에 관해 연구하고 대안을 찾는 제도권 여성학 교육의 오늘날 현실은 어떤가?
한국연구재단의 학술표준분류표에 따르면, 복합학으로서의 여성학은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 정치, 경제 등 이슈를 여성주의 관점에서 탐구함으로써 여성의 평등한 권리와 삶의 질을 구현하는 학문적 분야"로 성평등의 진전을 위해 확산이 시급한 분야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에서 여성학을 하는 사람들, 즉 계명대, 부산대, 성공회대, 충남대 등에서 로컬여성학을 바탕으로 지역을 성평등한 공간으로 바꿔 나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역이 화두인 가운데 소멸과 위기 중심의 담론을 넘어 삶의 터전이자 현장으로서의 지역, 즉 지역의 의미를 '성평등한 삶터'로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이분법 속에서 '떠나야 할 곳'으로 타자화되는 지역에서 여성학을 매개로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며, 지역을 살아 숨 쉬게 하려는 노력은 그 의미가 중차대하기 때문이다.
절망 속에서 유토피아를 꿈꾼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는 '기획으로서의 희망'이라는 영역으로 우리를 이끌며 '희망하기'에 기반한 '희망의 기획'으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지역 위기 속에서 로컬여성학 역시 이런 희망의 기획 중 하나다. 일상이 학문이 되는 공간으로서의 여성학 강의실을 지키는 이들이 있는 한, 로컬여성학으로의 유토피아적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인 셈이다. 유토피아란 '완성된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낯설게 보고 다른 형식으로 삶을 상상하고 욕망하게 만드는 사고의 형식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