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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면서 커닝한다, 내로남불러들의 포트폴리오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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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부린이’ ‘주린이’ 교과서
고위 공직자 재산 목록
일러스트=유현호

일러스트=유현호


“집값 안정되면 집 사라”는 발언으로 무주택자 가슴에 불을 지른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차관은 정작 자신은 ‘갭투자’로 자산을 불렸다는 게 직접적인 사퇴 원인이 됐다. 여권은 그가 자기 발언에 책임을 통감하며 물러나는 그림을 바랐겠지만, 부동산 시장에선 ‘역시 차관직보단 아파트’, ‘부동산 투자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까지, 민주당 정권은 또다시 ‘내로남불의 늪’에 빠져드는 상황인 것.

그런데 스스로를 ‘가붕개’(조국혁신당 조국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쓴 말로 가재·붕어·개구리의 줄임말. 서민을 일컫는다)라 칭하는, 성실히 일하며 자산을 증식하고 싶어 하는 중산층들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이 전 차관의 포트폴리오는 분노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좋은 ‘교과서’가 된 것이다. 대출 규제로 내 주거 사다리를 걷어찬 위정자들이지만 그들이 가진 것이 곧 ‘검증된 우량 자산’이 되는 아이러니다.

부동산 매매 전략은 뭔지, 어떤 주식을 사고팔지, 미장(미국 주식)인지 국장(한국 주식)인지, 증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의 행보가 가장 영리한 ‘정답’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리얼시그널은 진짜 신호?

최근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리얼시그널’이라는 사이트가 화제다. 고위 공직자들의 실제 부동산·주식·코인 현황 등을 보여주는 웹사이트다. 관보 등에 공시되는 대통령, 국회의원, 장차관, 판검사 등 7004명(사용 가능한 모든 공시 데이터를 포함한 ‘모든 기간’ 기준·12일 현재)의 자산 내역이 담겼다.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각화한 것이 특징이다. 지도 기반 화면에서 실제 고위 공직자들의 거주지와 투자 지역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서울시 기준(2891명)으로 강남구에 482명, 서초구 456명, 송파구 271명 순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25구(區) 중 역시 ‘강남 3구’에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이 집중된 것. 국회·대통령비서실·국토교통부·한국부동산원·한국토지주택공사·대법원 소속 인사가 가진 자산인 경우 별 표시를 했다. 파란색에서 빨간색에 가까울수록 그 지역에 여러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위 공직자들이 보유한 부동산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한 '리얼시그널', 파란색에서 빨강색에 가까울수록 여러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리얼시그널

고위 공직자들이 보유한 부동산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한 '리얼시그널', 파란색에서 빨강색에 가까울수록 여러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리얼시그널


가령 지도상 ‘빨강별’이 붙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누르면 국민의힘 안상훈 의원,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24명이 보유(전세 포함)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시 빨강별이 붙은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민주당 강선우 의원과 임종성 전 의원 등 15명이 갖고 있다. 부부 모두 대기업에 다니는 김민수(가명·43)씨는 “자녀 교육 때문에 대치동 등 학군지로 이사하는 것이 목표인데 리얼시그널을 뒤져보는 것이 취미가 됐다”며 “임장(부동산 구경)을 갈 때마다 해당 아파트를 어떤 유력 인사가 보유하고 있는지 찾아본다”고 말했다.


리얼시그널은 한 개인이 개발했다고 한다. 본지가 개발 목적 등을 문의하니 “인사이트가 있는 특정 공직자들의 투자 동향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부동산 실거래를 연동해 현재 추정 가치와 추정 수익률을 밝히고, 암호화폐·주식의 실거래 연동, 과거 자료까지 추가하는 것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똘똘한 한 채’와 ‘강남 불패’

리얼시그널에 따르면, 압구정 현대와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함께 서초동 삼풍(19명), 압구정 한양(13명), 잠실 엘스(12명), 가락동 헬리오시티(12명),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11명),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11명) 등도 보유자 수가 두자릿수 였다. 모두 강남 3구에 있다.

개인별 검색도 가능한데, 이재명 대통령을 검색하면 분당 수내동 아파트 등 부동산 19억3000만원, 예금 15억8000만원 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 역시 원래 살던 수내동 아파트는 보유 중이고 지역구인 인천 계양구에서는 전세로 살았다. 이상경 전 차관은 논란이 된 아파트(분당 백현동 판교푸르지오그랑블·33억5000만원)를 포함해 56억6000만원 상당을 갖고 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달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상경 전 국토부 1차관의 발언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1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달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상경 전 국토부 1차관의 발언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1


이 전 차관이 ‘똘똘한 한 채’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부린이(부동산 초보)’들에게 교훈을 남겼다. 그는 아파트를 사고파는 과정에 두 차례나 ‘주전세(점유개정·매도인이 전세로 눌러앉는 방식) 갭테크’를 활용하고, 절묘하게 시기를 맞춰 일시적 2주택 양도세 비과세 혜택까지 챙겼다. 복잡한 부동산 정책과 세법, 타이밍까지 완벽하게 짜 맞춘 종합 예술의 경지라는 평. 서초구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컨설팅을 받았거나 스스로 아주 촘촘한 계획을 짠 투자의 귀재로 보인다”고 했다.

경기도에 사는 30대 직장인 남모씨는 “우리 동네 국회의원도 강남에 집이 있고, 민주당 서울 지역구 의원 6명도 지역구가 아닌 강남에 집을 샀다니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강남 불패’는 절대 불변의 진리가 돼가는 분위기. ‘내 이름은 오춘삼’이라는 유튜버가 만든 ‘나는 들어왔으니 이제 성문을 닫아라’라는 제목의 시사 풍자 애니메이션도 51만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노른자 땅을 차지한 고위 공직자들이 방벽을 높인다는 내용이다.

역시 대형주가 답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후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한 이후 실제 코스피는 50% 넘게 폭등했다. 이럴 때 또 모범 답안이 될 수 있는 게 고위 공직자들의 포트폴리오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5월 ‘KODEX 200’과 ‘KODEX 코스닥150’에 각각 2000만원씩 거치식으로 매수했다고 밝혔는데, 지난달 30일 기준 해당 ETF 수익률은 각각 60%, 30% 안팎을 기록했다. 민주당 이소영 의원도 자신의 매수 내역과 수익률을 공개하며 코스피 견인에 앞장서고 있다. 여권 지지자인 이성호(55)씨는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샀다고 하니 믿음이 간다”며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지 않겠나”라고 했다.

리얼시그널에서 ‘증권’ 항목으로 들어가면 고위 공직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항목은 삼성전자(3018명)였다. 이어 테슬라(1372명), 애플(1235명), 카카오(1077명), 엔비디아, 네이버, 삼성전자우, LG에너지솔루션, 현대차, SK하이닉스 순으로 보유자가 많았다. 이들도 대형주와 미장 대표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짰다는 얘기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이억원 금융위원장의 포트폴리오도 청문회 과정에서 공개되며 화제가 됐다. 그는 두산에너빌리티 26.1%, 타임폴리오 K바이오액티브 15.6%, SOL 조선TOP3플러스 13.8%, 코덱스 레버리지 12.5%, 스트래티지 7.6%, 테슬라 6.6%, 엔비디아 3.5%, 기타 14.3% 등이었다. 시중 증권사의 한 PB는 “매우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포트폴리오”라고 평가했다. 한국 시장과 대표 분야에 대한 낙관적 전망, 세계 산업 흐름과 미래 전략을 놓치지 않는 전략적 구성으로 짜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학 개미’였다. 그의 포트폴리오는 작년 말 기준 완전한 ‘미장 중심’으로 바뀌었다. 비트코인 투자 회사인 스트래티지로 절반 이상(50.8%)을 채웠고, 반도체 대표주 엔비디아(20.5%), 양자 컴퓨터 관련주 아이온큐(15%),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13.7%) 순으로 꾸려졌다. 특히 그는 전년도에 보유하고 있던 국내 주식을 모두 털고 미장으로 돌아섰다. 야권 지지자인 주부 김모(68)씨는 “지난해부터 투자 강의를 듣고 미국 주식도 들어갔는데 오 시장과 겹치는 종목이 많아 잘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증여는 이들처럼… 절세의 기술?

증여와 상속도 이들을 따라 하면 된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장녀의 아파트 전세금 6억5000만원을 빌려주는 과정은 ‘증여 기술’의 한 장면으로 평가된다. 김 후보자는 아내와 금액을 쪼개 지원하면서 자신은 저리로, 아내는 무이자로 딸에게 빌려줘 증여세를 한 푼도 안 냈다. “세무사를 통해 적법한 세금을 냈다”고 했는데, 그 말인즉슨 전문가의 코치를 받아 위법·탈법을 피했다는 것.

민주당 양부남 의원은 한남동 단독주택을 20대인 두 아들에게 나눠주면서 증여세도 대신 내줬다. 역시 불법은 아니지만 제도의 허점을 잘 활용한 사례. 부모 세대보다 잘사는 것이 어려워진 대한민국에서 ‘아빠 찬스’에 대한 위화감이 크지만, 정치적 부담보다는 경제적 이득이 더 중요했을지도. 한 세무사는 “조부모가 부모를 거치지 않고 어린 손주에게 재산을 바로 나눠주는 세대 생략 증여도 몇 년 전 민주당 출신 모 장관 사례가 알려지면서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남 아파트는 평당 2억원을 돌파했고, 금값도 고공행진 중, 원·달러 환율도 1460원대를 오르내린다. ‘현금은 쓰레기(Cash is trash)’라는 말이 회자되고, 한 증권사 지점에 스님이 내방했다는 사진까지 돈다. ‘내로남불 대명사’들을 욕하면서도 그들의 로맨스를 들여다보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인지도 모른다.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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