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송윤혜 |
일본 정부가 지난 11일 총리와 각료에게 지급되는 세비를 당분간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국회의원은 매달 급여로 129만4000엔(약 1218만원)을 받는데, 총리는 여기에 115만2000엔(약 1084만원), 각료는 48만9000엔(약 460만원)을 추가로 받아왔다. 이번 조치로 이 추가 수령분을 당분간 받지 않게 된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 때부터 내각 급여 삭감을 언급해왔고, 지난달 취임 기자회견 때도 “세비를 초과하는 급여를 받지 않는 법 개정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이 겪는 고물가 고통을 정치권이 분담하겠다는 취지다. 일본 국회는 앞서 코로나 팬데믹 기간 세비 20%를 자진 삭감한 바 있다. 국민 고통을 나누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옆 나라 정치인들이 급여를 줄여 고통 분담에 나서는 사이, 한국에서는 ‘세비를 깎자’는 목소리만 돌고 돈다. 정작 국회는 움직일 기미조차 없다.
◇올해 의원 연봉 1억5690만원… 중위소득의 약 3배
국회전자청원 사이트에 꾸준히 올라오는 청원이 있다. 바로 “국회의원 연봉(세비)을 줄여달라”는 것이다. 시민 이병곤씨는 지난 3월 국회의원의 임금과 활동비를 삭감하라는 청원을 올렸는데, 5만명 넘는 국민이 이에 동의했다. 그의 청원 취지는 이렇다. “(의원들이) 일해야 할 시간에 일을 하지 않고, 국민을 위한 민생은 뒷전이고, 서로 욕하고 싸우기만 하여 국민에게 피해를 줌.” 7월 국회 운영위 회의에 이 안건이 상정됐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김병기 위원장의 한마디가 전부였다. “청원심사소위원회로 회부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
올해 국회의원의 연봉은 1억5690만원(명절 휴가비·활동비 포함)이다. 국가데이터처의 가장 최신 조사인 2023년 중위소득(국민 가구 소득의 중간값. 가구원 수를 감안하지 않은 전국 2만 가구 표본조사 기준) 5681만원의 2.8배다. 국회의장은 여기에 335만원, 부의장은 182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장관을 겸직하는 의원에겐 의원 급여가 아닌 장관 급여(1억9595만원)가 지급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나라 의원들이 받는 연봉은 높은 수준이다. 올해 한국 의원들은 최근 발표된 IMF의 우리나라 1인당 GDP(전망치)의 2.97배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이는 미국(1.94배), 프랑스(2.16배), 영국(2.17배)보다 높고, 일본(2.9배)보다도 소폭 높은 수준. 지난해 발간된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 의원에게 합당한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재임 기간 직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이병곤씨 청원처럼 여론은 싸늘하다. 지난해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국회의원 세비 축소’에 대해 응답자의 71%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선거 앞두고 “깎겠다”…일부 의원은 반납·기부
한동훈(오른쪽)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2월 1일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당시 비대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직역이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우리 국민들 중위소득에 해당하는 정도의 액수를 세비로 받는 것이 어떨까"라고 했다. /뉴스1 |
정치권에서도 세비를 깎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종종 나온다. 주로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의원 연봉을 중위소득 수준으로 낮추자고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세비 성과급제’를 공약했다. 입법 실적·성실성 등을 지표로 세비를 차등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세비를 최저임금의 5배 이내로 제한하자는 안(심상정·2019년), 회의 불출석 의원의 세비를 최대 90%까지 삭감하자는 안(민주당 국회혁신특위·2019년) 등도 있었다. 모두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현재도 세비 삭감 관련 법안이 6건 발의돼 있다. 내용은 두 가지다. 정당한 사유 없는 불출석 시 수당 감액, 금고 이상의 형 확정 시 재판 기간 지급된 수당 환수다. 이전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여럿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됐다.
세비를 반납하거나 기부해 사실상 자진 삭감하는 사례도 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2018년 4월 국회 파행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한 달 치 세비를 반납했고, 정의당 의원 5명은 2019년 세비 인상분을 반납했다. 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20대 총선 때 세비 50% 반납을 공약해 실천했다. 재선인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도 초선 때부터 자신이 받는 세비의 30%를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전체 의원의 세비가 전년도보다 줄어든 적은 없다. 국회는 운영위 예비심사와 예결위 본심사를 통해 공무원 보수 인상률 범위 안에서 세비를 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내년에는 올해보다 덜 받자’는 결정이 내려진 적은 없다. 의원들이 스스로 급여를 정하는 구조에서 감액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이유로 영국은 제도 자체를 바꿨다. 영국은 2011년부터 독립 기구인 의회윤리청이 의원 급여의 조정 폭을 결정해, 의원들이 자체적으로 급여를 정하는 것을 막고 있다. 미국은 정치적 선택으로 세비 인상을 멈췄다. 미 의회는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고통 분담을 하는 차원에서 연봉을 동결했고, 이 결정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세비 삭감이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는 당사자들의 조직적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의정 활동의 생산성이 높고 국민의 신뢰가 두텁다면 세비 인상에도 반대할 이유가 없겠지만, 현실은 생산성과 신뢰도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라며 “뜻있는 의원들이 어려운 계층을 돕는 기금으로 세비를 내놓는 자발적인 세비 삭감 운동을 벌이는 방식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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