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기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반만년 가까운 세월을 품은 그 유장함과 '빨리빨리'를 좇는 우리네의 시간 감각은 완전히 다르다./플리커 |
‘마침내’ 이집트 대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이 11월 1일 공식 개관했다. 개관이 거듭 미뤄지는 바람에 이집트 여행을 계획한 이들의 애를 태운 박물관이다. 7000년 이집트 역사를 축구장 70면 규모로 담아낸 이집트 대박물관을 제대로 보려면 70일 밤낮이 걸린다고 한다. 웅장한 박물관 건물을 멀리서 바라본 채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야만 했던 2년 전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집트 여행은 어릴 적부터 간직한 꿈이었다. 피라미드 앞에 섰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세상엔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는 게 있다. 영상 자료를 그렇게 많이 보고 자료를 읽었어도 실물(實物)은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카르나크 신전 기둥을 쓰다듬을 땐 숭고미가 날 강타했다.
수천 년 된 석조 유물을 만질 수 있는 경험은 ‘행복의 충격’을 선사한다. 땀에 젖어 올라간 쿠푸 대피라미드 속 ‘왕의 방’은 정적이 흘렀다. 1960년대 중학교 수학여행, 경주 석굴암 본존불 앞의 경외감이 떠올랐다. 현대 어느 장식화보다 세련된 네페르타리 무덤 벽화 앞에선 말을 잃게 된다.
전 세계 관광객들로 가득한 룩소르 신전의 번다함 속에서도 해설사의 신성 문자 설명을 경청하는 이가 많았다. 석양에 물든 콤옴보 신전 그늘에 앉아 홀로 명상하던 여행객 모습이 생생하다. 이집트 유적 앞에선 역사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된다. 막대한 치유 효과가 있다.
하지만 눈을 의심할 정도로 화려한 고대 유적 바로 옆엔 먼지 가득한 현지 마을이 있다. 찬란한 고대 문명과 현대의 신산한 삶이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이다.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의 오지랖에 불과하지만 ‘역사가 과연 진보하는지’ 되묻게 된다.
카이로 시내 곳곳엔 미완성 아파트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외벽과 옥상에 철근과 벽돌이 드러나 있고 유리창 없는 거실에 빨래가 걸려 있었다. 건물 뼈대만 분양받아 창문이나 가구는 살아가면서 마련한다고 한다. 완공 후 부과되는 재산세 절세 목적도 있고, 사막 모래 먼지와 강한 햇빛 때문에 페인트칠을 생략한다. 자족하면서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 냄새 나는 풍경이다.
이집트에선 시간이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반만 년 가까이 우뚝 서 있는 기자 대피라미드의 유장함과 ‘빨리빨리’를 생활화한 우리네 시간 감각은 다르다. 순환하는 시간이 켜켜이 쌓인 게 곧 삶이라는 교훈을 피라미드와 카이로 미완성 아파트가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5세기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일화다. “신전 사제들은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보고 330명에 이르는 역대 파라오들의 이름을 읽어주었다.” 기원전 450년 이전에 이미 300명 넘는 왕의 유구한 통치가 지속되던 나라가 이집트인 것이다.
그럼에도 중동 강국 이집트의 현실은 나아지고 있다. 산업 구조를 바꾸는 ‘2030 이집트’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 중이었다. 아스완에서 아부심벨 신전까지 왕복 7시간 걸리는 사막에서도 나일강 물을 끌어와 사막을 밀밭으로 바꾸고 있었다.
이집트의 미래는 이집트 국민의 몫이지만 당신이 무얼 상상하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나라가 이집트다. 이집트에서 30년 거주한 한인 교포의 말이 귀를 울렸다. 외국인이 전면 철수한 2011년 ‘아랍의 봄’ 때도 카이로를 지킨 분의 얘기다. “피라미드는 현존하는 유일한 세계 7대 불가사의이지만 현대 세계의 진정한 불가사의는 대한민국”이라고.
역사의 의미에 침잠하면서 우리의 빛과 그림자를 되돌아본 이집트 문명 기행이었다. 지금도 서재 책상에선 카이로산(産) 50달러짜리 요염한 코발트 빛 고양이 신상(神像)이 내게 속삭인다. 당신도 언젠가는 이집트 대박물관에 가야만 한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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