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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사표를 던졌다, 詩를 위하여

조선일보 박해현 ‘한국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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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가들은 저녁 모임에서 예술을 논하고, 예술가들은 저녁 모임에서 돈을 논한다.” 탐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말이다. 금융과 예술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대척점에 있다.

그런데 은행에서 돈과 시를 동시에 거느릴 뻔한 시인도 있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박용래(1925~1980) 시인. 충남 강경상고를 졸업한 그는 1944년 조선은행 경성 본점에 들어갔다. 출세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돈다발보다는 시집이 더 그의 영혼을 잡아당겼다. 시인 박목월을 존경하면서 습작을 거듭했다.

결국 1947년 그는 시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고는 은행에 사표를 던졌다. 국어 교사가 돼 계속 시를 쓰더니 195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그는 시에 헌신하겠노라며 교단을 떠났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다시 교사가 된 적도 있지만, 번번이 곧 관둔 전업 시인이었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겨울밤’)

1980년 느닷없이 심장마비로 타계하기 전까지 그는 간결 명료하면서 여백의 공간을 살린 서정시의 미학을 독보적으로 수립했다. 강아지풀을 사랑한 ‘가난한 아름다움’의 시인이었다. 펑펑 잘 울어서 ‘눈물의 시인’이라고 했다.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좋았고, 비 오는 날보다 눈 오는 날이 좋았다”며 시 ‘저녁눈’도 남겼다.

박용래의 시는 싸락눈처럼 옹골차고 조용하다. 올겨울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에서 그의 시를 보고 싶다. 돈타령에 찌든 세상, 잠시라도 안 보고 살게.

[박해현 ‘한국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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