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 “방향 전환” 발언이 가뜩이나 예민하게 움직이던 채권시장을 흔들었다. 한은은 “시장의 오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살얼음판인 채권시장 불안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금리 인하의 규모·시기, 심지어 방향 전환도 새로운 데이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시장을 자극한 건 ‘방향 전환’이란 표현이다. 그동안 금리를 내리거나 동결해왔던 한은이 금리 인상으로 방향타를 트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해석이 번지면서 채권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12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장중 연 3.300%까지 치솟았다(채권 가격은 하락). 지난해 7월 이후 처음 3.3%대를 돌파했다. 3년물 금리와 10년물 금리는 각각 2.923%, 3.282%로 거래를 마치며 각각 연중 최고치를 새로 썼다.
12일 싱가포르에서 블룸버그TV와 인터뷰하는 이창용 한은 총재. 블룸버그TV 유튜브 캡처. |
이 총재는 지난 12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금리 인하의 규모·시기, 심지어 방향 전환도 새로운 데이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시장을 자극한 건 ‘방향 전환’이란 표현이다. 그동안 금리를 내리거나 동결해왔던 한은이 금리 인상으로 방향타를 트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해석이 번지면서 채권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12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장중 연 3.300%까지 치솟았다(채권 가격은 하락). 지난해 7월 이후 처음 3.3%대를 돌파했다. 3년물 금리와 10년물 금리는 각각 2.923%, 3.282%로 거래를 마치며 각각 연중 최고치를 새로 썼다.
채권시장 ‘발작’에 이날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그는 “통화정책의 방향이 그렇게 단기간에 바뀔 수는 없다”며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런 표현들을 계속 가져가야 할지를 전망 수치에 따라서 고민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13일 다른 한은 관계자 역시 “인하 기조 다음에는 상당 기간 (금리) 멈춤에 있다가 인상으로 가는 것이 그동안 일반적인 경로였다”며 “시장이 오해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이날에도 채권 금리는 종가 기준 3년물 2.932%, 10년물 3.267%로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정부의 확장 재정으로 내년 국채 발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쏟아질 채권 물량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이 총재의 발언은 시장 불안에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연말 요인도 더해졌다. 운용사들은 11월 실적이 보너스와 연결되는데, 9~10월에 뒤늦게 금리 인하에 ‘베팅’했던 일부 기관들은 금리가 갑자기 뛰자 손실을 줄이려 서둘러 되팔면서 변동성을 키웠다. 은행채 발행도 이번 주에 집중됐다.박준우 하나증권 연구원은 “성장률 상향 기대와 환율 급등, 외국인의 선물 매도 등으로 수급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총재의 매파적 발언이 겹치며 채권시장이 패닉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또 있다.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오는 27일)를 불과 2주 앞둔 상황에서, 한은이 빠진 ‘딜레마’ 때문이다.
한은은 이달 금통위에서 수정 경제전망을 내놓는다. 앞서 지난 8월 한은은 내년 성장률을 1.6%로 예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2%, 한국금융연구원은 2.1%, 기획재정부ㆍ한국개발연구원(KDI) 각 1.8% 등으로 발표했는데 한은의 전망치를 웃돈다. 이 총재는 이번 인터뷰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의 “상향 조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소비가 살아나고 있고, 부진했던 건설 경기가 반등 신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ㆍ미 관세 협상 세부안 타결로 경제 불확실성도 어느 정도 걷혔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 총재는 잠재성장률(물가 상승 없이 달성 가능한 최대 성장률)을 “아마도 1.8~2.0%”라고 추정해 밝혔다. 실제 성장률이 이와 비슷한 수준이면 추가로 금리를 낮출 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환율 역시 한은에 부담이다. 달러 대비 원화가치는 1470원 안팎을 오르내리며 낮은 수준(환율은 높음)을 유지하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값이 떨어지면 수입품의 가격이 올라, 국내 물가(목표 2%)에도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이 총재가 같은 인터뷰에서 “환율이 과도하게 움직일 경우 개입할 의향이 있다”며 사실상 구두 개입성 메시지를 내놓은 배경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기대보다 효과를 내지 못하는 점도 걸림돌이다. 한은이 올해 들어 7·8·10월 세 차례 연속 금리를 유지한 이유 중 하나가 가파른 서울 집값 상승세다. 이 총재는 “유동성을 늘려 부동산에 불을 지피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한은은 최근 연구보고서를 통해서도 “집값이 오를 거란 기대 심리가 합리적 수준을 벗어났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낮출 경우, 경기 부양보다는 집값을 큰 폭으로 밀어 올릴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소비쿠폰의 효과가 소멸한 이후 내수 경기에 대한 우려를 지우기 어렵고, 중소기업은 부진한 경기에 자금난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며 “부동산ㆍ환율 등 불안 요인이 진정되면 한은의 금리 인하는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박석길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이달 금통위에서는 금리를 동결하겠지만, 경기와 인플레이션 지표를 고려할 때 완화 사이클이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다”라며 “성장과 인플레이션 데이터에 따라 내년 1분기에 금리 인하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유미 기자 park.yu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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